워싱턴 5박 7일 출장기 (2)
출장기간동안 묵은 호텔은 워싱턴 서쪽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이란 모텔급 호텔이었다. 출장이 원체 급히 결정되어서 프라이스라인을 이용하기에 시간이 없어서 워싱턴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잡았는데, 이 놈이 보살펴주기 쉽게 자기 집 근처에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가보니 그동안 워싱턴 갈때마다 묵었던 동네.  메인로드에 있는 상점이 매우 익숙하다. 할리데이비슨 가게, 햄버거 가게, 한국인 식당, 레드 크랩... 

수요일 아침 친구가 출근하면서 픽업을 왔다. 7시 반. 패어팩스에서 워싱턴DC까지는 차로 20분 밖에 안걸리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단다. 커플라인이라고 2인승 이상 이면 이용할 수 있는 라인을 타면 빨리 갈 수 있단다. 시내 들어가서 좀 헤메긴 했다. 네비게이션이 우리만큼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시간에 늦지 않게 세미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고문시간 시작.  처음에는 참관인이라고 발표자료도 주지 않는다. 비공개로 진행한다더니 홈페이지에 세미나 한다고 올려놓고 KBS에서 와서 취재까지 해갔다. 뭐라고 했더니 USB에 자료를 담아서 준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보란다.  인터넷 환경은 몇년전보다 훨씬 좋아져서 세미나실 곳곳에 콘센트가 있고, 무선랜이 작동한다. welcome to Johns Hopkins Guest gateway라고 뜬다.

4시반쯤 첫날 세미나가 끝났고, 나가보니 친구 놈이 와 있다. 그래서 간 곳이 ....바로 이곳


우측 위에 있는 유리로 덮은 호텔로 갔다.


내부가 대충 이렇게 생겼는데, 중앙에 있는 분수쇼 오른쪽에 있는 부페에서 저녁을 했다.

워싱턴에서 한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새로 생긴 리조트인데, 아직까지 워싱턴에 있는 한국인에게는 잘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풍광이 매우 좋았다.


음식 맛은 별로 였다. 일인당 30불이 좀 넘었는데, 야채는 무척 신선했지만, 정작 메인인 바베큐 비프와 포크가 조금 떨어지고, 해산물 가짓수가 얼마되지 않고 디저트 코너가 매우 빈약했다. 친구 이야기로는 이곳 식당 와인값이 소매상의 3배 정도가 보통인데 이 곳은 4배를 받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이 모든 것을 사소하게 만들었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같이 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호텔로 돌아와(한명빼고 모두 패어팩스에 살고 있다) 인천면세점에서 샀던 탈리스커를 개봉했다. 인천면세점에도 다양한 싱글몰트위스키를 팔고 있었다. 2시가 넘어 헤어졌다.




by 서산돼지 | 2009/07/04 07:39 | 구경 거리 | 트랙백 | 덧글(0)
워싱턴 5박 7일 출장기(1)
지난주에 5박 7일로 워싱턴 출장을 다녀왔읍니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열린 세미나 참석이 유일한 목적이었는데 아침 9시 회의를 시작해서 오후 4시가 넘어야 끝나는 강행군을 꼬박 4일간 해야했읍니다. 
대충 이런 분위기의 세미나였읍니다. 마이크도 없고 저는 발표자가 아니라 참관을 하는 입장이어서 테이블에도 앉지 못하고 뒤에 멍텅구리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자체 체중으로 엉덩이가 내리 눌려서 무척 아프더군요. 아침, 점심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아침은 가운데 뒤편에 보이는 테이블에 빵 몇쪼가리와 커피가 전부였읍니다. 커피 한모금 마시고 바로 버렸읍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주는데, 볶음밥과 파스타가 전부. 호텔에서 4.5불에 주는 아침보다 못하더군요. 세미나 끝나고 저녁을 같이 하는데 만두집, 모로코식당 같은데 였는데 저는 워싱턴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려고 빠졌읍니다.

출장기간중 유일하게 널널한 시간은 바로 도착 당일 이었읍니다. 여기서 화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13시간 날라서 화요일 점심에 워싱턴에 도착했읍니다. 마중나온 친구가 제 취향을 잘아는지라 점심 먹자고 데리간 조지타운대학 근처의 정통이탈리식 피자집입니다.
앤쵸비를 곁들인 구운 고추
발사믹 식초를 뿌린 아스파라거스

정작 본게임인 피자는 먹느라고 바빠서 사진을 못찍었읍니다.

식사후 대충 차타고 백악관 근처를 지나고


대통령께서 묶으신 블레어하우스로 보고
화요일 일정중 가장 중요한 일정인 내셔날즈 파크로 직행.

내가 이번 출장이 힘들고 얻을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잘알면서도 가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여기 때문이었읍니다. 출장기간중 보스턴 레드삭스가 워싱턴에 와서 워싱턴 내셔날즈와 원정경기를 3연전 벌였읍니다. 내셔널즈가 원체 인기가 없는 팀이어서 가기 전에 점검해보니 표가 아직 많았지요.  

그런데 도착해보니 좌회전해서 주차장 들어가는 신호가 없었읍니다.

경기장을 눈 앞에 두고 포토맥강 다리를 건너야했읍니다. 

겨우 겨우 차를 돌려서 주차장을 찾아보니 전용주차장은 사전등록된 사람만 주차시킬 수 있었읍니다. 경기당일에 옆건물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어 겨우 차를 댈 수 있었읍니다. 주차비 30불. 

매표소에 가보니 이게 웬일.  입석권 빼고는 매진이란다.  암표를 찾아보니 한장에 200불. 그냥 입석권을 샀다. 

보안검색은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

높다란데 올라가서 시원하게 보았다. 다리가 후덜덜

새로 지운 구장이라서 그런지 전광판도 멋있고

평일날이면 절반도 차지 않는다는 내셔날즈 파크가 만석이라니. 레드 삭스의 인기는 대단한 듯.

경기는 7시 5분에 시작했는데, 해가 원체 길어서 경기중간에야 불이 들어온다
 
경기는 5회말까지는 보스턴이 한점 내면, 워싱턴이 한점 따라가는 식으로 재미있게 진행되었는데
5회말 1안타 2포볼로 만든 찬스에서 보스턴 피쳐가 폭투를 해서 5: 5 동점을 만들었다가 더 이상 점수를 못냈는데
그후 보스턴의 타선이 폭발해서 11:5로 끝났다.
내셔날즈가 달리 비인기팀이 아니었다. 기록에는 남지 않는 실수가 왜 그리 많은지. 수비는 왜 그렇게 버벅이는지.
병살플레이할 찬스에 선행주자만 죽이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인터리그라서 보스톤 투수가 타격을 해야해서 투수 앞 타자를 고위4구로 내보내고 투수를 잡는 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너무 늦어서 24시간 영업하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대충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눈을 붙었다. 이게 몇 시간만의 취침인가!
by 서산돼지 | 2009/07/03 06:41 | 구경 거리 | 트랙백 | 덧글(3)
오랫만에 듣는 임수경 이야기
임수경이 북한에 뿌렸던 금단의 열매들

임수경이란 이름은 80년대 20대 청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20대 초반을 불태운 그녀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떤 삶을 보내고 있을까? 그 시절을 어떻게 생각할까?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들른 사이트에서 그녀에 대한 북한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난 그녀가 방북하였을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국대학생 대표로 한명을 파견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야기대로 수천명을 보내자는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수천명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니, 어디선가 방꾸가 뚫릴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틈을 타고 남쪽의 자유의 물길이 북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에서 였다. 남북남녀간에 무슨 일이 생겨 평양축전이 끝나고 머지 않은 장래에 북에 남겨두고 온 연인을 그린다던가, 한순간의 만남으로 사랑의 결실이 생겼다던가 하는 후일담이 꾸준히 생겨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한 순간의 온풍이 불었으면 하는 뜻에서 였다.

링크한 글을 읽어보니 임수경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내 바람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by 서산돼지 | 2009/07/02 06:30 | 들은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2)
세계테마기행-루마니아 마라무레슈 지방
여태까지 많은 취미생활을 해보았지만 역시 취미중에 최고의 취미는 해외여행인 것 같다. 신기한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고 진기한 물건을 사는 등 주위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 것 즐길 수 있어서 5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드문 취미인 듯 싶다. 문제는 몇년에 한번이 아니라 십년에 한번 하기가 좀 힘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글루에서 만난 많은 분들도 해외여행을 즐기고 계셨다.  얼마전에 니야님이 세계일주를 끝내고 돌아오신 듯 싶은데 참 부러워죽겠다.  은퇴하면 그 기념으로 지중해 크루즈를 해야지 다짐하곤 했는데 요즘은 유럽일주를 해야지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여행다큐멘타리를 많이 본다.  스카이 hd에서 방송하는 스마트 트래블을 보면서 아 맞아 저기가 우리가 갔던 곳이야. 야! 그 뒷골목에 저런 곳이 있었네 하면서 시작된 여행다큐멘타리가 이것 저것 돌아서 요즘은 kbs에서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와 ebs에서 하는 세계테마기행을 즐겨보고 있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세계테마기행 루마니아편을 보고 있는데, 참 좋은 장면이 나왔다. 이번 편에서 최미선 작가와 신석교 사진작가 부부가 나왔는데 두 사람은 마라무레슈 지방에서 그 지방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축제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정작 축제에서 부부가 제일 주목을 받았다.

포즈도 취해주고

한 잔 걸치신 노인장과 한 장 찍기도 하고

그런데 취재나온 루마니아 방송국에서도 부부를 인터뷰 한다 

최미선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들이 이곳에 단지 구경을 하려고 왔으면 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겠는가? 어느 나라에 가도 그 나라 고유의상을 입고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더란다. 이국땅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는 첫 걸음은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어느 분이 쓴 글이 기억이 난다. 모습은 다를지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대접하는 모습이야 말로 서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첩경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 긴장감이 묻어난다.

검은색 승용차에서 평상복차림의 사나이가 내리는데 루마니아 대통령이란다.

미녀들이 나와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역시 만국공통인 듯 싶다.

그런데 무질서한 군중 틈으로 대통령이 들어가서 인사하고 악수를 한다. 주변에 경호원인 듯한 건장한 사내가 서넛은 있지만 참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심지여 외국방송국과 즉석 인터뷰도 한다. 즉석에서 고장 홍보도 한다. 참 놀랄 일이다.


그나 저나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이 장면이다. 축제공연에 참가하는 어린이인데 참 이쁘다. 인형처럼 이쁘다는 말이 이럴때 쓰나보다.  이런 이쁜 딸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

by 서산돼지 | 2009/06/21 23:33 | 구경 거리 | 트랙백 | 덧글(5)
삼립 하이면
겨울이면 생각나던 하이면



국민학교 3,4학년때 였으니까 아마도 70년대 중반쯤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국수를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는 것은 정말 연례행사였고, 보통 라면이나 소면밖에 없었던 시절에 갑자기 하이면이라는 상품이 등장했다. 마른 면밖에 없었던 시절에 촉촉히 물기를 머금은 생면이 인스탄트로 등장하다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신기한 일이다. 젖은 면이어서 보관문제 때문에 겨울에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쉬었다.

봄이 되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구멍가게에 하나 하나 재고가 없어질때 마다 아쉬운 마음이 그득하였다. 언제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는데, 연전에 우연히 상암구장에 축구보러갔다가 구장내 마트에서 발견하고 사서 먹어보니 그 맛이 옛 맛이었다. 그뒤에 마트에 갈때마다 하이면 있는가 물어보는 것이 버릇 비슷하게 되었는데 다른 마트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 하늘공원에 갔다오면서 몇 봉지 사놓았다.  그동안 방부제가 발달했는지 여름철에도 냉장하지 않고 전시되어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짬뽕 하이면이었는데, 김하이면, 해물하이면은 있어도 짬뽕하이면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시 품절인지 나오지 않는지 잘모르겠다.

어제 술을 좀 과하게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속이 좀 좋지 않았는데, 김 하이면 한 봉지 끓여먹으니 해장으로도 좋았다. 다음에는 좀 더 넉넉히 사놓아야겠다.
by 서산돼지 | 2009/06/18 22:18 | 먹거리 | 트랙백 | 덧글(11)
[바톤] 독서론
릴레이 - 讀書論 어부님 얼음집에서 트랙백



독서는 [게으름이다 즐거움이다 그리고 병]이다.

저는 무척 게으른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가끔 가다가 일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되뇌이는 적이 많습니다. 귀찮다고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룬 것이 쌓였기 때문이지요. (비적 유성탄에서 공손낭자가 왕현/모용수/나유성에게 한 말이지요) 그래서 가능한 한 일은 노동을 가장 적게 들이고, 통과할 수 있는 최저점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자연히 취미생활도 가능한 몸을 쓰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독서였읍니다. 돌으켜보면 독서만큼 비용 대비 효용이 높은 취미도 드믈 것입니다. 가령 은하영웅전설을 예로 들겠읍니다. 수만척의 전함이 엉켜서 함대전을 벌인다고 상상해보십시요.

그걸 영화로 찍으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들겠읍니까? 애니로 제작하는 것이 훨씬 저렴할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라디오 드라마가 좋겠네요. 성우가 "함장, 013섹터에 적함대 출현" "2000척....3000척....7000척.... 점점 늘어납니다" "앗" "2개 함대 규모입니다 !!!" 말로 다 떼울 수 있겠지요. 그것보다 훨씬 더 손쉬운 방법이 글로 쓰는 것이겠지요.

제 입장에서도 영화를 보거나 TV를 보는 것보다 책으로 읽는 편이 시간날때 마다 읽을 수 있고, 원할때 마다 다시 볼 수 있고, 책장에 있는 책을 보면 안읽어도 흐믓하고

한데 그렇게 읽다보니 이제는 병이 된 듯 싶습니다.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읽고 있읍니다. 신문이건, 잡지건, 모니터를 보건..하여간 시간날때마다 뭔가를 보고 있읍니다. 문자중독증에 빠진 듯 싶어요. 심지여 드라마, 예능프로도 TV를 보는 것이 아니라 리뷰를 읽는 것으로 떼우다가 정 화제가 된 것만 골라서 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름만 알고 정작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톤은 oldman님과 이준님께 넘겨드리고 싶네요.


by 서산돼지 | 2009/06/17 18:12 | 내 생각 | 트랙백(1) | 덧글(4)
닉슨 前부통령의 '1박 2일' : 푸대접과 오뉴월 서리 복수
의전 이야기하다보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서 통째로 타이핑

푸대접받은 닉슨의 오뉴월 서리 복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데 비운의 정치가가 독을 삼켰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정월에 태풍을 몰고 온다든지 장미철에 눈을 내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를 부를까 아니면 자존심 말리는 보복이 있을 것인가.
전제주의국가가 아닌 민주국가라면 단연 후자의 경우가 많을 것이다. 더구나 비운이 행운으로 바뀌어 힘을 가지고 독을 뿜는다면 당하는 자의 얼굴은 창백을 넘어 투명해질 것이고 그의 자존심은 아예 땅 밑으로 사라져 보이지조차 않을 것이다. 때문에 닉슨의 한과 고집이 지금 이렇게 내게 서늘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닉슨은 정말 무서운 성격과 집념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우린 사소한 실수로 닉슨에 한을 제공해 끝내 그의 집권 6년간 숱한 굴욕을 감당해야 했다.
닉슨과 한국과의 관계는 6.25 때까지 올라간다. 당시 아이젠하워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그는 한국전의 휴전을 바라보며 아시아에 눈을 뜨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후 1960년 케네디에게 대통령 선거전에서 패하고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시자 세계의 언론은 성급히 결론을 내렸다.

'이제 닉슨은 끝났다"

그러나 결코 닉슨은 녹녹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 자신 존슨의 월남정책을 바라보며 차기 대권을 위해 히든 카드로 월남전을 연구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 근처라도 살펴야 하는 법. 1966년 홀연히 일어선 그는 월남을 이해하기 위해 아시아로 달려왔다. 닉슨은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돌아보며 뼈저리게 깨우친다.

'미국이 이해하기에 아시아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하다. 때문에 앞으로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른바 후일 '닉슨독트린'이라 불리우는 보검의 담금질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당시 닉슨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작은 이런 움직임을 감지 못한 점이다.
동남아와 일본을 돌아본 닉슨은 월남에 병력을 파견한 한국의 표정을 살피려 1966년 9월 마닐라 정상회담을 한 달 정도 앞둔 때 1박2일의 짦은 여정으로 서울 땅을 밟았다.
하나 그때만 해도 닉슨의 짦은 걸음걸이가 후일 우리의 목에 들어댄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정말로 나 이외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첫 걸음이었다.
아무리 주지사 선거에서까지 패했다지만 닉슨은 그래도 거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때문에 브라운 대사는 청와대 문을 두드려 박대통령과의 만찬을 타진했다. 그러나 국제감각이 무딘 박 대통령은 별로 탐탁찮게 여기곤 청와대 빗장을 좀처럼 열려 하질 않았다.
'협상의 귀재'라 불리며 불과 두 달 전 나와 함께 '브라운 각서'를 만들며 월남 파병협상을 끝낸 브라운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급기야는 내게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각하, 지금 닉슨이 온 모양인데 사람팔자 알 수 없읍니다. 그를 비록 언론에선 끝났다고 냉대하지만 그래로 그는 아직 거물이고 차기 대통령 후보로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침 그가 불우할 때니 지금 그를 후대한다면 결코 우리를 잊지 못할 겁니다'

브라운 대사에게 떠밀리다시피 청와대에 들어왔지만 사실 나도 속으론 박 대통령이 니슨을 꼭 만나 주었으면 싶었기에 강력히 닉슨과의 만찬을 종용했다. 그러나 그는 달갑잖은 표정이었다.

'그 사람 이미 끝난 사람인데 구태여...'
'그래도 각하......'

속이 탄 내가 재차 건의했으나 여저니 박 대통령의 얼굴엔 찬기운이 감돈다. 결국 닉슨은 박대통령과 점심도 못하고 그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로 끝낸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 될려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예상외의 예우에 몸이 단 브라운이 그날 저녁 급히 장관들과 함께 하는 만찬을 추진했는데 공교롭게 마침 같은 시간에 박 대통령이 장관들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내 입에선 절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미 대사관 만찬장에 들어서니 미군 장성들과 함께 앉아있는 사람이라곤 불과 두서너 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내 느낌으로도 시종 식사 내내 닉슨의 표정은 텅 빈 좌석만큼이나 공허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대로 두면 우리나라에 득될 게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난 식사가 끝난 후 닉슨을 넌즈시 찔러 보았다.

'어떻습니까, 피곤하지 않으면 아직 시간도 초저녁인데 제가 기생집으로 모실까요?'
'좋소'

워낙 지루했던지 의외로 그는 쾌히 고개를 끄덕여다.

'그럼 잠시후 브라운 대사와 함께 셋이서 가도록 하죠'

그러나 그날 하늘은 끝내 우리편이 아니었다.

'참, 저는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가야 할 데가 있어서 좀 곤란한데요...'

닉슨을 보좌해 줘야 할 브라운이 난색을 표하는게 아닌가, 니슨 혼자 간다면 사실 예우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자 닉슨은 할 수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여기서 이야기나 합시다'

결국 난 기생집 가는 걸 포기하곤 미 대사관에서 그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중간 생략)...

사실 닉슨을 박대한 건 우리 외교 관행에도 문제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사람대접은 어제와 내일이 없는 오늘 뿐인 단견으로 점철되어 왔었다. 아무리 그가 한물 갔다는 평을 듣는 정치인이라 해도 일국의 부통령까지 지낸 인물을 그렇게 소홀히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일 얘기를 들었지만 닉슨은 동남아와 일본에선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한다. 운명은 모르는 법이라 하여 모두들 닉슨을 최대한 예우해주며 미래투자를 한 것이다. 그러니 가뜩이나 자존심 세기로 소문난 닉슨이 한국의 경우와 비교 안할 리 없을 테고, 아마 잠을 자면서 이를 갈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역시 내 우려는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2년 뒤 1968년, 제 3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닉슨이 월남전으로 수세에 몰린 험프리를 누르고 백악관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근소한 차이였다. 만일 월남전만 아니었다면 험프리의 승리는 명약관화였다.
닉슨이 당선되자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박대통령이었다.

'그때 잘해줄 걸....'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예상대로 닉슨은 취임식이 끝나기 무섭게 '닉슨독트린'을 제창한다. 아울러 주한미군의 철수까지 거론한다.

'그까짓 한국 힘 없으면 망하라고 해. 무슨 상관이야. 일본만 자유민주국가로 남아도 충분한데...'

갑자기 청와대에 비상벨이 울리는 건 당연한 일. 당시 한국의 안보 기둥인 주한미군의 철수는 곧 국가와 정국의 혼란을 부를 건 뻔한 일이고, 그렇게 되면 박대통령의 정권유지차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존립 자체까지 위협받게 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모든 루트를 다 동원해서 박 대통령과 닉슨의 면담을 주선하라'

한국의 정계는 발칵 뒤집혀졌고, 워싱턴행 비행기엔 우리 쪽의 밀사가 줄을 이어,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최규하는 물론 나까지도 워싱턴 정가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닉슨의 정책성도 좀 가미된 보복은 이때부터였다. 백악관 빗장은 커녕 근처에 접근하는 것조차도 허용치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끌기를 무려 반년. 그 사이 박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미국에 제주도를 군사기지로 내주겠다는 등 추파를 던졌고 끝내 닉슨은 못이기는 척 입을 연다.

'그럼 좋소. 그러나 워싱턴에선 안되고 8월, 내 여름 휴가때 내 고향 근처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휴가때 별장으로 놀러가는데 그쪽으로 오라니...... 그것도 그의 고향인 샌클레멘티 집엔 그나마 헬리콥터 이착륙장까지 갖춰져 있어 박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시설이라도 있었으나 닉슨은 그것마저도 아깝게 여겨 샌프란시스코의 샌프란시스코호텔에서 보자는 것이었다.
무릎꿇고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이 차라리 더 나을 듯 싶었으나 이쪽이 잘못한 것도 있으니 어쩌랴. 박 대통령은 자존심의 눈물을 머금고 1969년 8월 21일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당시 난 이미 공직에서 물러나 있었던지라 후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때의 심정을 전해 들었다.

'내 약소국의 비애를 옛날 케네디 친서 건으로 버거 대사에게 당한 것 이상으로 비참하게 맛보았소. 난 그날 비통함의 연속이었소. 약속시간에 맞춰 자동차로 호텔에 가면서도 난 최소한 호텔 로비에선 닉슨이 맞아주리라 기대했었소. 그러나 호텔 로비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릴때도,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닉슨은 나타나지 않았소. 내가 방에 들어선 후 왼쪽의 큰 문이 다시 열리길래 보니 그쪽 방 저끝 구석에 닉슨이 선 채 날 맞이하는 게 아니겠소. 물론 걸어오지도 않았고, 마치 속국의 제왕을 맞이하듯 했단 말이오. 그뿐만 아니오. 저녁식사 땐 시시껄렁한 자리 고향친구들 불러다 앉혀놓곤 같이 식사하라는게 아니겠소. 내 아무리 1966년 닉슨이 방문했을 때 섭섭하게 대했기로서니 너무한거 아니오'

이만큼 닉슨의 보복은 집요하다 못해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월남전을 끝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마닐라 정상회담에 의해 미국과 한국은 종전시에도 함께 협의하게 돼 있었다. 하나 닉슨은 이 약속을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키신저를 시켜 월남전을 끝냈다.
물론 미국 나름의 정책도 있었겠지만 결국 박대통령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후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닉슨의 1박2일'은 우리 역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그 1박2일이 주한미군의 첫 철수를 낳았고, 그건 박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을 안겨 줘 이후 10월 유신, 핵개발 등 자신의 불안을 보전해 줄 악수를 두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이후 카터행정부와도 사이가 안 좋았으며 미국과의 불화는 정국의 불안을 불러 결국 10.26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엔 분명 닉슨의 1박2일도 불씨의 하나였다.
또한 워낙 닉슨의 심기가 칼날 같았기에 우린 월남 종전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미국에 눈치조차 한 번 못 주고 그대로 당해야 했다. 키신저가 북경과 파리를 우가며 레둑토 월맹대표와 노벨 평화상 문안을 작성할때도 우린 그저 쓴 맛 다시며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우린 월남전을 통해 경제적 실리 이상으로 정치,외교적 성과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격이었다.
지도자의 사소한 판단, 특히 인간관계의 실수가 가져온 파장치고는 당시 크기위해 몸부림치던 약소국 한국에 '닉슨의 입김'은 피하지 못할 태풍이었던 것이다.

이동원, 대통령을 그리며, 서울: 고려원, 1992. pp.142-149


by 서산돼지 | 2009/06/17 13:47 | 들은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1)
국가의전(외빈영접)
오늘 아침에 sonnet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댓글중에 "미국 가서 국가 원수가 기지 대표(대령) 영접 받다니 듣도 보도 못한 것인 듯..."이란 대목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살펴보니 이 곳, 저 곳에서 미국방문에 나선 대통령께서 앤드류 공군기지에서 미국 국무부 의전장 대리와 공군기지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것을 놓고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 대통령 까기가 전임대통령 시절부터 많은 분들의 취미생활화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다. 다행히 상황이 정리되어 가고 있는 듯 싶다.

외교통상부 외빈방한 영접을 보면 국제사회내에서 의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글에서 "주요 외국 국가 원수가 공식적 정상회담을 위하여 방미할 때에는 부통령이 영접을 위해 나오거나 최소한 국무장관이 영접 나오는 것이 관례다."라는 것은 약간 오해가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미 국무부의 외국 국가원수 정부수반 방미현황을 보면 거의 1주일에 한두번은 외빈이 방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년의 거의 반을 해외순방에 다니는 부통령과 국무장관이 언제 이 많은 외빈을 공항영접한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도 국빈/공식방문때 외교부장관을 대리해서 다른 고위 관리가 공항영접을 나간다.

가끔 가다가 환대하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장관/총리가 나가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간 경우도 있다. 70년대말 카터 대통령이 방한하였을때 밤 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박정희대통령이 친히 영접을 나갔다. 그 당시 사정이 얼마나 좋지 않았나 하는 것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하겠다. 미국에서도 건국이래 대통령이 공항에 외빈영접을 나간 사례는 작년 4월 교황이 방문하였을때 딱 1번 이다. 하필 우리 대통령의 방미와 날짜가 겹쳐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 많았다.

국무부 의전장 대리가 영접을 나온 사연도 geforce님께서 만슈타인님 글에 다신 댓글이 정확합니다. 현재 미 국무부 의전장은 공석입니다. 미국 연방정부 전화번호인 federal yellow book 2009년 겨울판을 보면 의전장은 물론이고 그 밑에 있는 부의전장 2명도 공석입니다. 국무부 홈페이지에서 의전국을 찾아보니 로라 윌스가 aciting chief으로 되어 있더군요. 정식으로 의전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의전국내 최고서열자가 의전장 역할을 대행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앤드류공군기지 사령관이 영접나온 것은 G-20정상회담때도 영접나왔다고 하니까 사령관이 나가는 것이 그쪽 관례인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빈영접을 하면 옆에 같이 나간 사람들이 쭉 늘어서지요. 스타트랙에서 보면 고위 외계관리가 엔터프라이즈에 올때면 선장/부함장이 고위사관과 같이 트랜스포트룸으로 영접나가고 양측 대표가 서로 수행자들을 소개시키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예전에는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우리나라에서는 해당지역국장이 나가는군요)가 공항영접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안나왔다고 하는데 sonnet님이 지적해준대로 전임 동아태차관보였던 힐은 4월에 이라크대사로 임명되어서 자리를 비웠읍니다. 후임에 커트 캠벨가 지명되었읍니다. 6월 10일에 인준청문회가 열렸고, 16일에 표결이라고 하니까 지금쯤 결과가 나왔겠군요. 지명자가 의회인준도 받지 않고 영접을 나왔다면 그것이야 말로 문제거리겠지요.

저는 공항영접보다는 그뒤가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에 드신후 클린턴 국무장관, 가이트너 재무장관, 게이츠 국방장관, 커크USTR대표((개인적으로 이름이 스타트랙 오리지날 시리즈 선장인 제임스 T. 커크를 연상시켜서 호감이 갑니다)가 줄줄이 다녀갔읍니다. 국무,재무,국방은 미국 내각의 3인방이고 대통령 계승순위도 높을 뿐더러 이런 고위관리들이 바쁜 일과를 제쳐 놓고 면담하러온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인 듯 싶습니다. 취임후 첫번째 외빈이었던 아소 일본총리와도 45분간만 회담을 갖고 그냥 돌려보냈지요. 고든 브라운 영국총리가 왔을때는 지역코드 1번인 DVD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영국은 지역코드가 2번이어서 재생하려면 골치아프다고 하네요. 그에 비해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단독회담, 확대정상회담, 로즈가든 언론인터뷰, 공식오찬으로 이어져서 환대를 받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듯 싶습니다.
by 서산돼지 | 2009/06/17 12:00 | 잡담 | 트랙백 | 덧글(4)
BBC 다큐멘타리 남태평양(South Pacific)
Audio Video 취미를 꽤 오랬동안 즐기고 있는데 그중 영화를 보는 것과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읍니다. 요즘 HD소스가 구하기 쉬워져서 다규멘타리를 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읍니다. 선명한 화질, 화려한 음질은 푹 빠져들만한 매력이 있읍니다. 요즘 BBC에서 제작한 남태평양이란 다큐멘타리를 보는 중입니다. 내용도 좋지만 화면이 장난이 아닙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커집니다











무슨 장면인 것 같으십니까? 전 처음 보면서 글쎄, 글쎄, 그럴리가를 연발했읍니다.


살짝 눌러주세요
by 서산돼지 | 2009/06/14 18:14 | 세상 보기 | 트랙백 | 덧글(10)
분당 유타로
돈코츠라멘, 유타로(雄太郞). 분당, 서현역.  찰리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찰리님이 유타로 글을 올리신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포스팅을 하는 이유가 있다.  헛걸음을  몇번 했기 때문이다.  오픈 기념으로 한 그릇에 1000원씩 받는다는 글을 읽고 아니 갈 수 없어서 그주 주말에 가족을 데리고 분당으로 향했다. 유타로 찾는데 약간 애를 먹었는데, 도착해보니 텅빈 가게에 주인장이 빗질을 하고 있었다. 하두 손님이 많이 오셔서 재료가 다떨어졌다는 것이다. 다음날 또 갔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줄이 쭉이어져 있는 것이 기다렸다가 먹으려면 30분-1시간은 걸릴 듯 싶었다.  라면 한그릇 먹기위해 줄서기는 싫어서 평양면옥에 가서 냉면을 먹고 돌아왔다. 이틀 허탕을 쳤더니 은근히 오기가 생겨서 다음날 퇴근하면서 또 갔지만 역시나 였다. 공짜밥 먹기 참 힘들다.

몇주가 지나서 세종연구소에 갈 일이 생겼다. 돌아오는 길에 유타로에 들렸더니 한가했다. 라면 한그릇으로는 양이 약간 부족한 듯 싶어서 사리를 추가했고, 공기밥 무료라고 해서 밥 말아 먹었다.  느끼하고 기름긴 음식을 좋아하는 내 식성에는 조금 더 국물이 진했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충분히 맛이 있었다.

그후로 분당사는 동료들과 함께 저녁때 몇번 다시 찾았다.  사리를 미리 시키는 것보다 나중에 추가로 시키는 쪽이 덜 식어서 좋았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밥맛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무료로 주는 밥인데도 불구하고 고슬고슬하게 제대로 지어서 맛이 훌륭했다. 면, 국물보다 밥을 더 잘 지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맥주는 서비스입니다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동안 입소문이 났는지 이 방면에 고수로 이름높은 건다운님의 식유기에도 리뷰가 올라왔고 평가도 후한 편이다.
by 서산돼지 | 2009/06/11 06:00 | 먹거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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