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텍을 위한 진혼곡
여태까지 많은 브랜드를 좋아했고, 아꼈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지만, 알텍만큼 나를 열광시킨 브랜드는 없었다. 한때 내가 가진 모든 스피커는 알텍이었고, 지금도 자동차에 달린 스피커와 북셀프스피커 한조를 빼고 본가에 A-7, 집에 512A시스템, 컴퓨터용 ACS500을 갖고 있고, 언젠가는 인클로져를 짜고야 말겠다고 15인치 풀레인지인 420 한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많은 알텍당원이 있지만, 알텍의 계보와 역사에 대해서 나만큼 아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어제야 알게되었는데 그토록 나를 환희에 잠기게 했던 알텍이 마침내 문을 닫았다. 알텍의 모회사인 EV(Electro Voice)회사가 Telex라는 회사로 넘어갔고, Telex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여러브랜드를 정리하였다. 알텍은 그 와중에서 살아남지 못하였다. 알텍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은 앞으로 EV 브랜드를 달게 되었고, 알텍 브랜드는 매각되었다. 알텍브랜드를 산 회사는 Altec Lansing Technology라는 회사를 새로 만들었으나 그 회사는 내가 좋아하는 알텍은 아닐 것이다.

하이파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하이파이를 달성한 회사, 미국의 우수한 음향기술자들이 다 모였다고 해서 회사이름마져 All technician을 줄여서 altec이라고 한 회사였다. JBL이 우수한 유니트를 개발하고 알텍을 떠난후 세계최초로 20Hz-20kHz를 커버하는 우수한 트랜스를 만들던 피어리스트랜스를 인수하였다. 이후 알텍은 질좋은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를 생산하여 극장과 PA시장을 휩쓸었다. 이제 40-50대에 접어든 중장년층이 어린 시절 극장에서 들었던 사운드는 거의 대부분 알텍이었을 것이다. 그 추억에 내가 알텍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알텍은 이미 70년대 후반에 문을 닫았던 것 같다. 70년대 들어 TV의 대중화로 영화관이 쇠하면서 주력시장이 줄어들고 회사는 경영난에 빠졌다. 또한 아프리카 콩고내전으로 코발트광산이 폐쇄되면서 알리코(알루미늄+코발트+니켈)자석을 만들지 못하게 되자 스피커자석을 페라이트로 바꾸면서, 한국-일본-대만의 열광적인 지지자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요즘 알텍당이 찾는 기기도 70년대 후반 이전 모델에 집중되어 있으며, 현재 생산중인 제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결국 헐씬 품질이 열악한 음향기기를 만들던 EV에 인수되어, EV의 알텍 디비젼으로 격하되어 본거지인 캘리포니아 애너힘을 떠나 중서부로 공장을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진공관 앰프시대는 지났다고 판단하여 알텍 진공관 앰프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던 피어리스트랜스를 매각함으로써 알텍의 황금시대가 지났다는 것을 고하였다.

86년인가 알텍 컨수머 프로던션사를 설립하여 가정용 음향기기 시장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이미 이때 알텍은 과거의 알텍이 아니었다. 소리도 좋았고, 품질도 뛰어났지만, 애호가의 허영심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50-60년대 생산하였던 호화시스템에 중독된 알텍당도 새로나온 시스템을 외면했다. 결국 활로를 찾은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컴퓨터용 스피커였다.

돌이켜보면 알텍의 몰락은 첫 걸음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803/416 우퍼, 515우퍼, 288 드라이버, 802 드라이버, 604 시리즈는 전부 JBL시절에 개발되었고, 그후에 조금씩 개량되지만 쭉 알텍의 주력상품이 되었다. 몇몇 변종이 나왔으나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른 회사의 제품이 고장나면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것인데 반해 알텍은 다이케스팅으로 제작된 플레임만 손상이 없으면, 콘지 코일 진동판을 바로 교체하여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우수한 품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93년인가 알텍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1950년대 초반에 생산하여 디즈니랜드 야외음악당에서 사용한 803우퍼를 구입하게 되었다. 너덜거리는 콘지를 교체하고 나니 신품과 동일한 스펙을 보여주었다. 그때 알텍 1947년에 제작된 앰프도 구입하였는데, 몇몇 부품이 필요해서 알텍사로 편지를 보냈다. 몇주후 여의도에 있는 동화음향이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알텍의 한국대리점을 하고 있는데 알텍사에서 내에게 연락을 해보라는 팩스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텍앰프를 샀는데, 15095라는 입력용 트랜스가 없어서 제대로 동작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부품을 구할 수 없느냐고 이야기했다. 전화를 건 양반이 부품카타록을 보더니 그 부품을 구해줄 수 있다면서 다음번 알텍에 주문을 넣을때 같이 주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몇달후 그 트랜스가 도착하였다. 그 트랜스는 아직도 알텍이 앰프를 만들때 입력트랜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근 50년전에 생산한 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달라고 했을때 이에 응하는 회사가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리고 50년전에 생산한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그때까지 사용하는 회사가 있을까?

그런 트랜스를 만들던 회사가 알텍이었고, 피어리스트랜스였다. 10여년전 오디오계에 광품처럼 진공관 붐이 일었다. 트랜지스터앰프가 초고가가 치달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진공관에서 보다 따뜻한 음색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발견되면서 각종 진공관 업체가 우수죽순처럼 생겨났다. 진공관 앰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출력트랜스이다. 진공관의 출력인피던스가 수킬로옴인데 비해 스피커유니트의 인피던스는 높아야 수십옴정도이기 때문에 이를 매칭시켜줄 출력트랜스의 존재는 참으로 필요악이라고 할 것이다.

초창기 출력트랜스의 음역폭은 가청주파수대를 커버하지 못하였다. 피어리스에서 20-20시리즈 출력트랜스를 생산하면서 20hz-20khz를 커버하는 출력트랜스가 등장하였고, 이제는 청계천에서 막감는 트랜스도 20-20Khz를 커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몇년전에 날린다는 진공관 앰프의 출력트랜스 특성을 측정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전에 올렸던 오디오룸의 주인이 음향기기관련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측정장비를 완비하고 있었다. 재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모든 트랜스가 20-20khz를 커버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랜스라는 것이 철심에 코일을 감은 것이니 만큼 자체적으로 저항값과 미미하지만 콘덴서값을 가지고 있어서 주파수 특성에 영향을 미쳤다. 저항과 콘덴서를 스피커 네트워크에서 주파수 특성을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트랜스가 가진 고유한 저항값과 콘덴서값으로 비록 주파수 대역을 충족하였지만, 고역으로 올라갈 수록 위상이 틀려졌다.

당시 초고가에 속하던 오디오 리서치의 제품도 10khz가 넘어가면 위상이 90도 이상 틀어졌고, 과거 고급트랜스라고 불리던 UTC도 13khz가 넘어가니까 위상이 틀어졌다. 오직 피어리스와 맥킨토시만이 20khz를 넘어서 80khz까지 평탄한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런 고급트랜스는 이제 두번 다시 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제성때문이다. 70년대 이전에는 음향산업은 요즘 IT산업 못지 않는 성장산업이었으며, 기술집약적 산업이었다. 진공관앰프의 수요가 넘쳐났기 때문에 제철회사에 오디오용 출력트랜스를 만들 고급 철심을 제작한 쇠를 특주할 수 있었다. 알텍과 맥킨토시는 출력트랜스용 철을 얻기 위해 광산을 조사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요즘 진공관 앰프는 극히 소수의 오디오 애호가를 위한 사치품이다. 유명한 진공관 앰프메이커라고 해도 일년에 생산하는 앰프는 수백대에 불과하다. 고로에서 나오는 철의 품질과 전기로에서 나오는 철의 품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고, 고로 한개에서 얻을 수 있는 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어느 오디오메이커에서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좋아하던, 많은 알텍당원이 사랑하던 알텍사는 이미 30년전에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제 호흡기가 떼어졌고 알텍은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렸다. 아무리 이전의 알텍이 아니라도 회사가 살아있다는 것과 문을 닫았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알텍의 유니트들은 앞으로도 EV의 이름을 달고 계속 나올 것이지만, 적자로 취급받을 수 있을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의 알텍은 앞으로도 계속 청아하고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소리를 계속 내어줄 것이다. 혹여 알텍이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올지라도 30대를 같이 보낸 알텍사운드의 추억은 소중하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천대하였지만 알텍의 페라이트자석으로 만든 유니트를 이용하여 시스템을 한번 꾸며보고 싶다. 알리코와 페라이트는 천양지차가 난다고 이야기하는 알텍당이 많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나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
by 서산돼지 | 2005/04/05 22:06 | 소리바라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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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별도 at 2005/04/06 13:19
허어어억!
결국... 저 같은 놈은 이제는 알텍을 만져보지도 못하게 되었군요.... ㅡ.ㅜ;;;;
Commented by 별도 at 2005/04/06 13:29
행여... 지금 사용하시는 유니트를 교체하실 때에는 가장 먼저 알려 주세요.... 아, 급구 합니다. LP들이 울고 있습니다. 턴테이블 찾습니다아아... (여기 광고해도 소용 없잖아. ㅡ.ㅜ;;;)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04/06 14:37
알텍이 원체 내구성이 좋아서 아직 싱싱한 것 넘치고 넘치도록 있읍니다. 이베이에 가끔 1960년대 물건이 박스 노오픈상태로 나오니까요
Commented by 솔로몬 at 2005/11/02 14:02
제가 알텍 acs500을 가지고 있는데 잭이 없고 달랑 스피커만 있습니다 잭은 타회사와 호환이 되나요?
답좀해주세여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11/03 05:33
솔로몬> 제가 정확히 모릅니다만, 별도의 규격은 아닌 듯 싶습니다. 흔히 보이는 잭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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