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의 동상을 세워야 합니다.
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

요즘 맥아더동상 때문에 세상이 다 시끄럽다. 그 시비를 보면서 좀 씁쓸한 생각이 든다. 6.25때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이 어디 맥아더 한 사람뿐이겠나? 우리에게도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한 백선엽 장군이 있다. 백선엽장군은 당시 1사단장으로 다부동-왜관에서 적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그후 지리산 공비를 토벌하였는데, 소설 남부군에서 남부군을 궤멸시킨 국군이 바로 백선엽장군이 이끈 백야전사령부였다. 육군참모총장을 2차례 역임한 뒤 4성장군으로 퇴임하여 외교관, 국영기업체장을 지내다가 은퇴하였다. 지금 살아계시고 아마 80세 중반정도 되었을 것이다. 백장군이 쓴 '군과 나'라는 자서전을 갖고 있다.

아마도 이순신 장군이후에 이러한 전공을 거둔 장군은 없을 것이다. 마땅히 동상을 세워서 후세에 기려야할 것이다. 다만 젊은 시절 만군사관학교를 나와서 만주군에 장교로 복무했던 것과 동생인 백인엽장군이 선인학원 비리를 저지른 점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웃나라에서는 잘못된 정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수백만명을 굶겨죽이고도 반성하지 않고 여러번 같은 잘못을 저지른 자를 국부로 숭상하면서 "공은 7이요 과는 3이다"라고 있다. 그점에 비춰보면 백선엽장군의 과는 1도 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한가지 잘모르겠는 것은 과연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예전에 생사당도 있었다고 하니 안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by 서산돼지 | 2005/09/15 20:07 | 내 생각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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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5/09/15 22: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09/16 05:29
아닙니다. 감사할뿐입니다. 지적해주신대로 고쳤읍니다.
Commented by 야기꾼 at 2005/09/16 11:59
얼마전 말씀하신 책의 영문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정말 전공으로 따지자면 왜 이런 분이 있다는 걸 알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숨길 정도인지는 이해가 안되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5/09/16 17:55
맥아더 장군 동상 건립도 56년 아니었나요? 살아있을 때였을텐데...
Commented by 로리 at 2005/09/17 00:55
재미있는 것이 정작 워커장군이나 릿지웨이 장군 이야기는 전혀 없죠. 백선엽 장군님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수준이고...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이준 at 2005/09/17 06:41
1. '군과 나'는 신문 연재물 모음치고는 상당한 퀄러티였습니다. 이게 유명해지니까 일역으로 "조선전쟁 천일"이라는 버젼으로도 나왔었죠. 남부군에 대한 코멘트 수준으로 약간 다운버젼이지만 그래도 백 야전사 부분만은 상당한 퀄러티인 "지리산" 역시 괜찮은 작품입니다.

2. 지리산을 봐서 느끼는데 의외로 백장군은 우익의 민간인 학살 부분에 대해서도 꽤 심도 있게 말하는 편입니다. "그건 다 거짓말이다. 북괴는 더 나쁘다" 식이 아니라. 양측의 학살 부분을 소개하면서 "그런데 안타까운건 양편 모두 이러한 학살극을 끝내지 않고 보복의 악순환을 낳은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나는 지리산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극을 직접 명령내린적이 없지만 행여나 하급 부대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이 지면을 들어 머리 숙여 사죄하겠다"라고 씁니다. -_-

3. 뭐 다른 분들의 회고록이 꽤 많이 퍼진 건 많지만 자기 자랑이나 쓰신 당사자들의 사건 참여에 대한 위치, 객관적 시각등은 "군과 나"를 따를수가 없습니다. 그게 진정한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유xx 장군이나 정xx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그걸 느끼게 되더군요)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09/17 08:53
야기꾼, 로리> 동족과 싸운 것을 부끄러워하는 심리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읍니다
슈타인호프 > 맥아더동상도 살아있을때 세웠군요. 그러면 백장군 돌아가시기 전에 제막식에 참석하여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겠읍니다.
이준> 경향신문이었나요? 신문에 연재될때 빼놓지 않고 읽었읍니다. 지리산 공비토벌할때 횃불작전을 폈던 것이 매우 인상깊었읍니다. 일을 많이 하신 분들이 회고록을 남기셨다면 그 당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60년대 외교만 하더라도 김용식장관과 이동원장관의 회고록이 없었다면 배경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서누 at 2005/09/17 11:38

저희 외가 쪽은 평양이 고향입니다. 사업하다가 공산당을 피해서 서울로 내려와서 정착했죠. 그러다가 서울까지 공산군에 점령당하는 바람에 학교 다니시던 외삼촌 둘이 끌려가 소식 불명이 됐고 (나중에 한분은 진남포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해 오셨습니다. 인민군복을 입고 돌아왔기 때문에 외할아버님이 힘을 쓰셨는데도 2년이나 감옥에 계셔야 했습니다) 갓 신부 서품을 받고 잠시 집에 들렀던, 셋째 외삼촌께서는 운동장에서 총살당했습니다. 가족의 반이 공장 지하실에서 남아서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숨어 있다가 몇 분이 굶주림에 지쳐 돌아가셨는데, 인천상륙작전 아니었다면 아마 다 돌아가셨거나 총살을 당했겠죠. 당시 인민군에게는 서울에 살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명단 같은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께서는 골수 자본주의자셨고, 평양에서 공산당원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으셨었죠.
Commented by 서누 at 2005/09/17 11:38
다행히(?) 제 어머니는 그 지하실에서 살아남으셔서 무럭무럭(?) 자라나 대학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어났죠.
그 난리 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맥아더 논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 어려운가 보더군요. 어릴 때부터 전쟁특집 다큐라도 할라치면, 맥아더 장군이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은 다 몰살당했을 거라며 고마운 분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때 시기적절한 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적어도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었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편을 지지할 수가 없네요.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09/17 12:02
서누 > 저는 친가, 외가 모두 이북입니다. 아버님은 평양이고 어머님은 해주지요. 해주는 38선 밑이니까 이북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요. 외가는 큰 화를 입은 분이 별로 없지만, 친가는 거의 몰살당하다시피했읍니다. 아버님도 수시로 내무서로 끌려가서 매맞고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평양과 평양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Commented by 머미 at 2005/09/19 08:33
요즘 분위기에서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간도특설대 문제가 불거져서 그야말로 공이 과에 덮이는 결과가 될 것이 우려됩니다. 백선엽장군은 스스로도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 장교였다는 것을 털어놓은 적이 있죠(물론 간도특설대가 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09/20 13:32
머미> 그때 간도특설대가 할 일이 있었을까? 자유시사변일어난 것이 언제인데...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5/09/25 21:53
간도특설대...글쎄요, "조선인도 군인으로 황국에 충성할 수 있다"는 상징성 짙은 부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하지만 실제 활동이 어땠건 간에 "불령선인 및 마적단" 토벌을 목적으로 한 부대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도당할 거리야 충분하겠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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