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원하는 체제 채택해야 했다
"미군정때 조선사람 77%가 공산·사회주의 지지" 강정구 “다수가 원하는 체제 채택해야 했다”


미군정때 조선사람의 다수가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채택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미소 공동위에서 남북한의 사회단체를 조사했을때도 과반수가 넘는 남한의 정당, 사회단체들이 사회주의를 원했다. 그건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대답을 한 사람들은 북한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를 택할 것인가를 놓고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표로 한 투표가 아니라 발로 한 투표였다. 6.25때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지역을 거의 점령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였을때 많은 북한 주민들이 보따리를 싸서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월남한 피난민은 500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전부 친일파, 자본가들일까?


흥남철수 사진이다.

흥남철수 -메리디스 빅토리호

흥남철수 당시 피난민을 실어 나른 화물선이다. 불과 7600톤급밖에 안되는 화물선에 무려 1만 4천여명의 피난민이 타고 남한으로 왔다. 무엇이 이들을 고향과 가족을 놓고 타향으로 떠나게 하였을까? 불과 5년밖에 안되는 짦은 기간이지만 공산치하에서 살아본 사람들이다. 공산치하에서 살기가 좋았다면 이 피난민들이 재산을 모두 버리고, 이런 고생을 하며 남한으로 왔겠는가?

곧 수복될 것을 믿었기에 고향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가족을 남기고온 사람들도 많았다. 분단이 고착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들도 같이 넘어왔을 것이다. 이때 월북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3-5만명 정도라고 한다. 100:1이 넘은 압도적인 결과가 아닌가? 월북한 사람들은 지식인이었다고? 글쎄 공산주의국가에서도 1인1표제가 아니었나?

왜 지난 시절 빨갱이라고 낙인을 찍으면 통했을까? 3개월 밖에 안되지만 공산치하에서 살아보니 이승만 독재정권하에서 살아본 것과 비교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대구 이남은 그 시절을 겪지 않았군.

강정구는 대답하라! 왜 5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당신이 그토록 주장하는 "다수가 원하는 체제"를 버리고 남으로 왔는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와있지만 일제는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해서 북한 지역을 대대적으로 군사화해서 한반도의 공업지대는 거의 대부분 북한이었다. 그래서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생활수준이 남한보다 높았다. 6.25 당시에는 남북한간에 생활수준과 고용기회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다수의 북한주민들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고향땅을 버리고 타향살이를 선택하였는가?

당국에게 촉구한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이 법이 살아있는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by 서산돼지 | 2005/09/30 21:50 | 내 생각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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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안모군 at 2005/09/30 22:09
강정구 교수의 경우는 완전히 논외 수준입니다만...
사실 대규모 남하는 미군 덕이 꽤 컸죠. 학살이나 이런 문제가 아니라 공폭에 학을 뗀 사람들이 꽤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의 경우도 그렇지만, 공폭 덕에 한 줌 남은 산업시설도 마비가 되었죠. 물론, 한 편으로는 미군의 폭격이 그리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는 반증도 여럿 존재하긴 합니다만...
이 외에도 북한군 자체가 사실상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무차별징집같은 경우는 점령했던 남한지역은 물론 북한에서도 일어났었죠. 보복이나 강제징집같은게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보니 내려온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한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는 일이죠. 결국 그런 상황을 만든건 북한이라는 괴수였던 셈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국보법으로 누굴 조지는 건 반대지만, 저런 케이스들은 좀 당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런 치들은 개념 탑재가 요망된달까요.
Commented by Gerda at 2005/09/30 22:39
굶어 죽고 싶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배가 불렀나 보네요, 저런 소리를 하는 걸로 봐선. 민주주의가 최선의 체제는 아니지만, 최소한 북한의 일인독제보다는 비교우위가 있잖아요.
Commented by 서누 at 2005/09/30 23:18
일단 강정구의 경우는 그 주둥이를 한대 갈기고나서 얘기를 시작하는게 옳은 순서입니다.
Commented by 이준 at 2005/10/01 07:50
1. 같은 진보쪽 학자중에서도 김동춘 교수같은 경우는 "6.25가일어나지 않았으면 민간인 학살은 4.3과 여순사건에서 종결되었을것이다. 그러나 6.25 발발로 보도연맹 사건과 같은 민간인 상호학살이 일어났다. 그래서 6.25 당시 민간인 학살의 1차적 책임은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김일성에게 있다"라고 분명히 명시합니다. 강교수가 얼마전에 했다는 논지와는 같은 진보인데도 완전히 다르죠 -_-

2. 폭격에서 살아남으려면 폭격하는 쪽으로 튀라는 건 이후 전쟁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됩니다. -_-;;;

3. 일제 연간에서 북한지역의 공업단지 집중이 70년대까지의 성장 활력소의 원동력과 연관은 그렇게 없습니다. 6.25 당시 국토의 사막화를 이루었지요 -_-;;; 그쪽 선전물에 의하면 전쟁 중에도 초과 목표 달성이라고 하는데 그건 뻥이고. 대략 건물 한채만 남은 평양과 "잠자는 건 죽는거"(당시 북한 주재 헝가리 종군기자의 회고)인 원산, 다 박살나도 굴뚝만 남아버린 공장지대의 압박이 심했습니다.

Commented by 이준 at 2005/10/01 07:53
4. 밑의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70년대 이래로 남북의 경제 격차의 역전은 "체제 자체"의 문제가 컸습니다. 북한식의 경제 운
용이 사실상 70년대가 한계였었죠.

5. 북한의 경우는 "미제에 의한 학살자"나 "납남자" 수만 발표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줄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500만은 약간 수치가 많습니다. 대략 잡아 380만으로 보긴 하죠. 커밍스,할러데이,강정구는 이들 숫자를 모두 "사망자"로 간주합니다. --;;; 와다 하루키의 경우는 이 숫자중 상당수가 이남 탈출자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6. 그나 저나 강교수 -_-;;; 같은 논지를 주장한 커밍스만큼의 연구 대상에 대한 애정과 자료선별력도 없고 할러데이 만큼이나 좌익 독재에 대한 혐오(할러데이는 좌파적 인민 운동에 대해서는 긍정하지만 스탈린이나 마오를 무지 싫어합니다.)도 없고.
Commented by 草人 at 2005/10/06 04:38
강정구 교수 부부는 미국에서 학위를 했고, 첫아들은 시카고대학나와서 로펌에 취직하고, 무엇보다 둘째아들은 "카추사"였더군요. 강교수 "본인의 이념과는" 상관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 고쳐매지 말라는 속담이 떠오르네요. 오래전 운동하던 친구가 카츄사 가면서 "원쑤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러 간다"고 하던 궁색한 변명이 떠올랐습니다.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5/10/09 10:08
초인 > 장성한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부모가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아. 가족사를 끌어들이는 것은 좀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해.
Commented at 2005/10/10 1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草人 at 2005/10/10 13:28
좋은 지적입니다.
Commented by 愚公 at 2005/10/15 19:04
강정구 교수의 주장 자체가 북한 정권에게는 모욕적일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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