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박 13일 동안 프랑스를 자동차로 캠핑하면서 여행하다
12박 13일간의 프랑스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중간에 길 잘 못들어서 역주행도 하고 목적지 지나친다고 급회전하다 받칠뻔도 했지만 하여간 사람도 차도 이상없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날라간 곳이 프랑스 남부에 있는 호데라는 도시입니다. 저도 처음 들어보는 도시인데 프랑스 남부 고원에 있는 전원도시더군요. 공항에 내리자 마자 예약해둔 유로파카에서 포드 포커스 디젤 매뉴얼 차를 인수했습니다. 예약 때는 에어컨없는 골프 디젤을 했는데 차없다고 대신 받았습니다. 에어컨이 달려있는 차여서 다행이었지요. 서늘한 영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후끈후끈했습니다. 에어컨없이 자동차여행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호데를 출발해서 아비뇽으로 향했습니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3시간 정도 달려갔습니다.


< 아비뇽 근교의 퐁 뒤 가르, 로마시대의 수로교중 최대의 유적 >

눈으로 본 아비뇽은 세계사 책이나 가이드북에서 본 것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론강이 굽이 돌아가는 드넓은 평야에 자리하여 옛날 성벽이 그대로 남아서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이미 성벽을 넘어 있었지만 해자를 매워서 건설한 듯한 순환도로를 한바퀴 도니 예스러운 도시의 풍모를 느낄 수가 있었지요. 론강은 홍수도 나지 않는지 물가까지 커다란 나무가 자라고 있었구요. 아비뇽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캠핑장이었습니다. 이번 여행경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캠핑장비를 챙겼거든요. 론강 가운데 있는 자그만 섬에 시립 캠핑장이 있었습니다. 유럽의 캠핑여행은 우리나라 사정하고 비교하면 거의 호화판 여행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웬만한 곳에는 시립이나 사립 캠핑장이 널려있고 기본적으로 샤워시설, 취사시설, 세탁, 전기시설이 다되어있습니다. 좀 좋은 곳은 레스토랑과 바, 슈퍼, 수영장 등을 다갖추고 있습니다. 방갈로나 캐라반도 대여해주는데 보통 일주일 단위라서 저 같은 사람은 이용하기 힘들지만 노인부부들이 한동안 쉬고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캠핑장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이 많더군요. 탠트치고 전기 끌어오고 밥을 해먹고 나니 해가 기웃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10시쯤 되어야 해가 졌는데 해가 질때까지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 습기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시내구경을 가려는데 이 더운데 어떻게 다리를 걸어서 건너나 하고 있는데 캠핑장 앞에 아비뇽 성문앞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주차장도 무료였습니다. 성문 앞에 내려서 성안의 골목을 이리저리 가보니 교황청 건물이 보입니다. 아비뇽 유수때 교황이 살면서 집무하던 곳인데 교회건물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설명을 보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요새라는 평을 받고 있더군요. 교황청 옆에는 노틀담 사원과 주교가 거쳐했던 작은 궁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시청과 시내광장을 둘러보고 슈퍼에서 장을 좀 보았습니다.



아비뇽 북문 앞에는 끊어진 다리가 놓여있는데 이 다리가 생 베네제 다리 또는 아비뇽 다리라고 부르는 것이랍니다. 12세기에 베네제라는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아서 평생을 바쳐서 헌금을 모아서 놓은 다리랍니다. 당연히 미친 놈 취급을 받았지만 론강 하구에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다리여서 아비뇽이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베네제는 시성을 받아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베네제의 조각을 보았는데 큰 석재를 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두세 시간보고 나니 더 이상 볼 것이 없어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아를로 향했습니다.



아를은 고대 로마가 지금의 남부 프랑스 프로방스지방에 식민할 때 주요 거점이었답니다. 2만명이 들어가는 클로세움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서 요즘도 7월이면 축제를 벌인 답니다. 그리고 다 허물어져가지만 무대와 객석의 일부가 남아있는 야외극장, 12세기에 세워진 교회, 오벨리스크, 지하묘지인 카타콤 등이 있었습니다.



아를에 도착해서 캠핑장에 탠트를 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형수퍼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비뇽에서 2-3시간 구경하는 동안 구름 한점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에 목이 타서 쉴세없이 음료수를 마셔야 했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콜라 한캔에 보통 2.5유로를 하고 생수 1리터에 2유로 정도하는데 네 다섯번은 사먹은 것같았습니다.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어서 아이스박스와 음료수를 사러갔습니다. 역시 대형할인매장은 다르더군요. 콜라 24캔 한박스에 5유로, 물 2리터 6개에 4유로 정도하더군요. 아이스박스와 아이스블럭이 대략 20유로 정도했습니다. 캠핑장 리셥션에 얼려달라고 하니까 2유로를 받더군요. 화요일 아침 아를을 도는데 작은 도시이고 유적이 붙어있어서 구경하기 좋았습니다. 콜로세움 타워에 올라서 보는 주변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 아를 시청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 오른 편으로는 13세기에 조각된 교회문이 있다 >

반나절을 보고 나니 구경은 다했고 아이스박스가 비더군요. 하루만에 본전을 뽐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를에 2박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후에는 마르세이유에 구경을 갔습니다. 역시 대도시는 복잡하더군요. 프랑스 여행중 아를에서의 2박은 잊지못할 것입니다. 모기가 어찌나 많은지 팔다리가 재봉틀에 박은 것처럼 물렸습니다.
수요일 아침 일찍 칸느로 행했습니다. 고속도로로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칸느해변에 가까운 캠핑장을 잡아서 텐트를 친 다음 모나코공국을 구경갔습니다. 한 40킬로 정도 떨어졌나요?



카지노장이 예술이더군요. 반바지 차림은 들어갈 수 없어서 입구 정원에서 사진찍고 주변에 즐비한 페라리가 내것인양 사진을 찍었지요. 농지라고는 한뼘도 없을 것 같은 가파른 절벽에 어찌나 건물을 이쁘게 세워놓았는지! 그레이스 켈리가 살았다는 궁전으로 가보았는데 경찰이 못들어가게 내ㅤㅉㅗㅈ더군요. 관광버스는 들어가던데…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니스-몬테 카를로스간 국도를 이용했습니다. 절벽길이었는데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니스해변은 자갈해변이어서 실망스러웠지만 해변의 풍광은 좋았습니다.
목요일 아침 칸느해변에 나가서 물장구를 좀 쳤습니다. 해변은 모래라서 니스보다 좋았지만 해변이 좀 ㅤㅉㅏㄻ고 주변 풍광이 니스만 못하더군요. 칸느영화제가 열리는 국제회의장에 가보았지만 스타가 없는 건물은 그냥 밋밋했습니다.


< 칸느영화제가 개최되는 국제회의장 앞에서>

이날이 문제였습니다. 그 다음 목적지는 몽블랑산 밑에 있는 샤모니였는데 프랑스지도를 보니 아비뇽까지 돌아가서 리용을 거쳐서 가도록 되어있더군요.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유럽지도를 보니 모나코공국옆이 바로 이탈리아인데 가요제로 유명했던 상레모,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샤보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갔다 중도포기한 토리노를 거쳐서 몽블랑산까지 고속도로가 나있고 몽블랑산에는 터널이 있더군요. 대충보기에도 거리가 가깝고 해서 그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오산이었지요. 프랑스고속도로는 130킬로가 한계인데 이탈리아도로는 100킬로였습니다. 물론 두나라 모두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는 거의 없었지만 프랑스고속도로가 평원을 달리는 것이라고 이탈리아 도로는 산악도로였습니다. 우리나라 중앙고속도로 같았습니다. 계곡에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고 직선구간보다는 곡선구간이 많고… 오후 2시에 칸느를 출발하면서 7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는데 갈수록 걱정이 되더군요. 이러다간 몽블랑산을 넘어서 어두울 때 샤모니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이 급해서 인지 몽블랑터널에서 과속하다가 카메라에 찍히기 까지 했습니다.


< 샤모니에서 바라본 몽블랑산>

샤모니에 들어가니 어둑어둑해지는 찰라였는데 시내 한바퀴를 돌면서 캠핑장을 찾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더군요. 캠핑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서 텐트를 치니 주변이 어두워졌습니다. 시내 야경을 보러 걸어나갔다고 조카가 잠이 들어서 업고 돌아오느라고 고생을 좀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몽블랑산에 올랐습니다. 4800미터가 넘는 유럽최고의 산인데 3800미터까지 케이블카가 놓여있고 주변을 감아 돌면서 이탈리아까지 케이블카로 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왕복하려면 300유로이상 들어서 그냥 3800전망대까지만 갔다왔습니다. 천하에 다시 없는 절경이었고 그곳에서 몽블랑산 오라간다고 나서는 사람, 밑까지 스키타고 내려간다는 사람, 걸어서 트랙킹한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한 것이 역시 높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조카아이가 머리아프고 춥고 어지럽다고 난리를 치더군요.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라서 결국 10분도 못있고 내려와야했습니다. 6살짜리 아이한테는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은 어디로 갈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는데 아침에 파리로 입성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하산하는 바람에 시간이 좀 남아서 파리가는 중간에 있는 디종이란 도시에 들렸습니다. 부르고뉴하면 포도주로도 유명하지만 예전에 이곳을 다스리던 공작이 결혼을 통해서 프랑스 동부부터 네덜란드에 이르는 거대한 영지를 차지하고 프랑스에서 독립하려고 획책해서 프랑스왕의 근심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샤모니에서 디종을 가는 길은 알프스를 벗어나자마자 평원이 시작되어 디종까지는 끝없는 농지였습니다. 그런 광대한 영지를 다스리던 공작의 영화는 대단했습니다.



공작의 저택은 영국의 어느 저택보다 웅장하고 화려했고 성당과 각종 조각물의 규모와 정교함은 예상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는 횡재를 한 기분이 들어군요. 7시쯤 공작저택 앞 광장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파리로 그냥 갈까 이곳에서 하루 잘까 하다가 파리에 있는 후배한테 호텔잡아두라고 부탁전화를 하고 그냥 파리로 강행했습니다. 파리에 11시가 넘어서 도착했는데 길을 몰라서 무척 돌아야했지요. 어찌어찌하여 후배를 만나서 별 3개짜리 호텔에서 하루밤을 자고 다음날 민박집으로 옮겼습니다. 유럽에 한국민박집이 많이 생겼는데 하루밤에 20유로 아침저녁제공이라는 조건이 매우 좋았습니다. 캠핑하면서 문제가 밥해먹는데 드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민박에서는 그냥 해주는 밥을 먹으면 되니까 너무 편하더군요. 화장실 가는 것과 샤워하는 것이 전쟁이고 투숙객의 거의 대부분인 베낭여행객들이 늦게 들어오고 일찍 나가서 잠을 편히 잘 수 없는 것이 단점이더군요.
토요일은 민박집에 짐풀고 루브르박물관, 콩고르광장, 상젤리제거리, 개선문, 신개선문, 에펠탑, 소르본느주변까지 돌았습니다.



일요일은 베르사이유궁을 갔는데 1일권을 끊어서 궁과 정원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마리앙토아네트가 정양을 했다는 농가는 정말 이쁘더군요. 월요일은 조카아이 성화에 못이겨서 디즈니랜드를 갔습니다. 아침부터 폭우가 온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입장객이 얼마 없더군요. 놀이기구를 몇 개 탓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조카아이는 얼마나 좋은지 펄쩍펄쩍 뛰더군요. 화요일 아침에 파리를 떠서 몽상 미첼로 갈 계획이었는데 마침 파리가 바겐세일기간이어서 어디나 50% 세일표지가 붙어있더군요. 마누라 성화에 못이겨서 화요일 아침은 라파에트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했습니다. 오후 2시쯤 몽상 미셀로 출발하려니까 민박집에서 그러더군요. 5시간 걸리는데 프랑스경찰이 있는 유일한 고속도로니까 속도조심하라구요. 프랑스 고속도로는 제한속도는 있는데 카메라와 경찰이 없습니다. 파리 근처에만 있는데 몽상 미셀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가서 단속을 한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파리를 출발해서 몽상 미셀에 도착해보니 7시쯤 되었는데 해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분위기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더군요. 9시쯤 되었는데 밀물이 밀려들어와서 주차장에 차를 빼라는 방송이 나와서 보니 물이 들어오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안에 있는 호텔은 이미 가득찾고 비가 온 다음이라서 캠핑하기에는 좀 곤란한 듯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생 말로로 갔습니다. 이곳도 아비뇽처럼 성벽을 허물지 않는 해변도시더군요. 시내에 싼 호텔에 들어가 잤습니다. 전기밥솥도 가지고 들어가서 밥도 하구요.


< 몽상 미셀의 뒤편 해변으로 나있는 작은 문, 이곳을 나가면 배를 댈 수 있는 조그만 부두가 있다 >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생말로 성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영국을 왕복하는 페리도 보이고 성 앞 바다에 이곳 저곳 조그만 섬에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이곳이 과거 프랑스와 영국이 자주 싸움을 벌이던 곳이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한바퀴 도는데 1시간이 넘겨 걸렸는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경치가 바꿔서 지루한 것이 없었습니다. 라스트콘서트에 첫장면이 몽상미셀이고 나중에 두주인공이 거니는 해변이 생말로라던데 과연 아름다운 해변이었지요. 생말로를 출발해서 르와르고성지대에 있는 투르를 향했습니다. 도중에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펼치는 르망이 나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투르에서 약간 떨어진 쉬농소성을 들렸습니다. 앙리 2세의 부인이었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는 평생을 남편의 정부인 다이아나 드 폴리에티르 때문에 고통을 보냈다고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다이아나의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아서 각종 작품을 만들어 바칠 정도였다니 다이아나의 미모는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다이아나를 총애했던 앙리 2세는 쉬몽소성을 다이아나에게 하사했고 다이아나는 강위에 다리를 놓고 회랑을 건설해서 오늘날 같은 모습을 만들었답니다. 강을 가로지르는 성은 정말 특이하더군요. 앙리 2세가 마상시합도중 부상으로 사망하자 카트린느 드 메디치는 그동안 왕이 다이아나한테 준 선물을 몰수합니다. 당연히 쉬농소성도 몰수당했지요.


< 쉬몽소성에 있는 카트린느 드 메디치 왕비의 침대>

그래서 성 2층에는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침실이 남아있습니다. 특이 했던 것은 스코트랜드의 여왕이었던 메리여왕의 유품도 있더군요. 메리는 어렸을 때 프랑스로 망명을 와서 카트린느 드 메디치의 아들과 결혼해서 앙리 2세 서거후 프랑스왕비가 되었는데 남편이 1년만에 죽는 바람에 스코트랜들 돌아가지요. 그녀도 쉬몽소성에서 머문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쉬몽서성을 구경하고는 7시쯤되어서 다른 성을 구경하기는 힘들 것같아서 그냥 남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이 호데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투르에서 호데는 한참 남았거든요. 남행을 한 것이 보르도까지 가게되었습니다.


< 보르도 중앙공원에 있는 청동제 마상, 원래있던 청동제 마상은 독일과 전쟁을 할 때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녹여졌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2차대전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보르도는 구시가지와 시가지 끝에 있는 공원과 기념탑이 멋있었는데 저녁 11시가 넘어서 호텔을 찾느라고 눈에 안들어오더군요. 한참 헤맺습니다. 역주행도 하고 차사고날 뻔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큰 도시여서 한참을 헤메다고 보니 호텔지구라는 표지판이 나와서 들어가보니 호텔이 많이 있었습니다. 에탑이라고 무인호텔에서 하루밤을 자면서 다음날을 위해서 밥도 했지요.


< 라스코 매표소, 동굴 속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목요일 아침에 보르도를 둘러보고 호데로 향했습니다. 가는 중간에 몬티악이라는 곳을 들렸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1시간 이상 들어간 산속인데 이곳에 크로마뇽인이 그렸다는 라스코벽화가 있습니다. 원래는 일반공개를 했는데 그림이 자꾸 훼손되어 1963년 폐쇄하고 옆에 똑같이 재현한 동굴을 만들어서 일반공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림과 그림이 겹쳐있는 것이 많아서 가이드의 설명이 없이는 전모를 알아볼 수 없더군요. 말이 달리는데 근육하나하나를 잘묘사했습니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와서야 라스코벽화에 쓰여진 테크닉이 개발되었습니다. 몬티악에서 호데까지는 산길이었습니다. 도중에 하두 배가 고파서 길가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읍니다.


프랑스는 고속도로도 그러고 장거리를 가는 사람을 위해서 중간중간에 휴게소를 만들어두더군요. 식사를 할 수 있게 벤치와 테이블이 있고 화장실과 공중전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같이 매점은 있는 곳보다는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참 편하더군요. 버너로 밥도 하고 라면도 끓여먹구요.
호데에서 별 3개짜리 호텔에서 짐정리하고 하루밤자고 금요일 아침 공항까지 차를 몰고가서 반납한뒤 영국에 돌아왔습니다. 비행기에 내리면서부터 프랑스가 그립더군요. 여름인데도 이렇게 추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파카입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by 서산돼지 | 2004/08/28 11:55 | 구경 거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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