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정통성은 선출직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대통령의 권력

"나라의 왕인 대통령"운운한 안희정의 말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참여정부 초창기에 새파랗게 어린 안희정이 집권당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여 많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더니, 참여정부의 끝이 보이는 지금 오래 살려고(?) 참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안희정의 말이 언론을 타고,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안희정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가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이다. 그가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의 말이 과연 뉴스가치가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에서 목소리를 높히는 많은 인사들에게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내년 2월 대통령이 퇴임하고 난 후 그들의 말이 과연 신문 방송을 탈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권력의 축은 신임대통령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신임대통령을 중심으로 새로운 뉴스메이커들이 등장할 것이다. 세상은 현 챔피온에게 관심이 있지 전 챔프는 나몰라 한다. 알리 기사가 일년에 몇번이나 신문에 나는가? 최근에 마이클 조던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의 권력에 대해서는 sonnet님께서 잘 정리해주셨기 때문에 다시 재론할 일은 없는 것같기 때문에 "권력의 정통성은 선출직에서만 나온다"는 안희정의 말을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선출직 공무원이 임명직 공무원에 비해 정통성이 강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임명직 공무원은 선출직 공무원에 복종해야 한다. 요즘 교육부 장관이 대학교수때 소신을 버리고 정권의 눈치만 본다는 비난이 있지만 장관은 대통령의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와 정책방향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그 자리를 맡지 말거나 해임당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터무니 없는 요구라도 행정부처의 공무원들은 군말없이(실제로는 욕을 버럭버럭 하겠지만)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리하여 행정부에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의 정통성이 선출직에서만 나온다고 볼 수는 없다. 참여정부에서 이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럼 히틀러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선거에 의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고, 따라서 그가 한 수많은 정책들로 옳바른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유신헌법도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니까 정통성이 있는 것일까? 국민의 직선으로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의 정통성은 반석 위에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체제이든 권위주의체제이든 유형과 관계없이 체제는 좋은 업적을 내야만 존속할 수 있다.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지라도 선거에 의해 정통성을 획득하고 난 뒤 체제의 효능과 효율성을 제고하여 좋은 업적을 내야만 안정적으로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다. 업적이 축적되면 정통성이 강화되고 다시 통치력으로 환원된다. 체제가 좋은 업적을 내고 있는 한 체제가 붕괴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민주주의체제는 정통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체제수행능력을 갖추게 되어 업적을 낼 수 있고 그 업적은 역으로 체제수행능력으로 환류되어 체제가 더욱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체제의 업적이 빈약할 때는 그 체제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다. 참평포럼이 첨여정부의 성과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도 이러한 점과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87년 6공화국 헌법을 만들었을 때 국회를 대통령보다 앞에 놓고 국정감사를 부활하고, 헌법재판소를 만들고, 선관위를 강화시키고... 등등등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하였을까?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안희정은 아마도 그때 거리에서 시위에 참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많은 헌법기관이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국회의 인준을 받아서 임명된다. 헌법에 따라 국민의 대리기관인 국회의 인준을 받은 이상 소관업무를 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정통성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헌법이 보장한 권력도 갖고 있다. 이들이 선출직이 아니라고 권력의 정통성이 없다고 그러는 자는 누구인가? 선거에 한번 나서보지도 못했고 아무런 직위도 가지고 있지 못한 야인에 불과한 자가 아닌가? 그는 단순히 권력자의 심복에 불과하다. 그의 말이 갖고 있는 무게는 국민들이 평소에 하는 말보다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의 행동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제를 처음 만든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의 국부들은 헌법을 만들때 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져서 국민을 억압할 것을 두려워해서 3권을 분립시켰다. 이때 또 한가지 고려한 것이 있었다. 우매한 대중(?)의 요구가 정치과정에 투입되어 다수에 의한 억압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일정한 부를 가진 계층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그것으로 모잘라서 연방정부의 선출직중 국민이 직접 뽑는 자리를 건국 초기에는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의원으로 국한시켰다.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이었다. 우리는 불과 몇년전에 국민의 다수 지지를 받은 고어부통령이 낙선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상원의원은 초창기에는 주의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하였다. 요즘은 헌법이 개정되어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 우리는 여론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미국은 여론에 따라 정치가 왔다 갔다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을 대리하는 대통령과 의회가 좀 더 옳바르게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여기에 현인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법원을 두어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토록 한 것이 미국의 3권분립제도인 것이다.

의원내각제를 처음 만든 영국도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투표를 최고 최후의 결정으로 받아들이지만 영국에서는 국민투표는 의회가 결정을 내리는데 참고하는 자료일 뿐이다. 최종 결정은 민의의 전당인 의회에서 내린다. 수상이 매우 큰 권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은 아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제 4의정서에 나와 있는대로 총선에서 승리한 당이 조각 직전에 당수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얼마전까지는 대법원이 상원의 법조귀족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즘 대법원을 별도로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 뒤의 이야기는 잘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영국은 국왕이 아직 건재한다. 영국에서 안희정의 말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불경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한다.

이전 대통령보다 6공화국의 대통령이 가진 권력은 명문상으로는 sonnet님의 말씀대로 대폭 약화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력이 문서에서 나열한 것만은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가진 권력과 집권 초기 YS가 행사하였던 권력은 그 범위와 수준이 다르다. 집권 초기 DJ의 권력과 임기말 권력은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하기에 따라서는 헌법에 써있는 권한을 넘어서 만기친람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무서운 직위라고 생각한다.

안희정의 말을 들으면서, 선관위의 거듭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씀이 자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걱정에 잠긴다. 요즘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권한에 자꾸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선거에 개입하지 않은 대통령이 어디 있는가? 청와대에 앉아서 인재와 정치자금 모으고, 선거에 유리한 공약 발표하고, 선거 직전에 극적인 이벤트를 성사시키고... 선거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 안다. 현직에 있는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전면에 자꾸 나오셔서 무리를 하는 것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수단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대통령의 권력기반이 이렇게 약화되었나! - 두려운 생각이 든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 한다. 북한 핵실험이후 동북아의 질서가 요동을 치고 있는 시점에서 대통령의 대내적 권력기반이 약화된다는 것은 국내정치에만 한정시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세계 랭킹 1-4위의 국가에 둘러쌓은 국가에 있어서 이 문제는 국가안보에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by 서산돼지 | 2007/06/20 21:52 | 내 생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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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6/21 00:55
당연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기린아 at 2007/06/21 09:08
사실 대통령이 좀 더 합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할수 있는 다양한 여지가 있는데, 꼭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방식만 사용하신다는 점에서, 저는 대통령이 현 상황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때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이지스 at 2007/06/21 10:53
훌륭한 글입니다, 형님. 휴가 전에 얼굴이나 보시죠?
Commented by 별도 at 2007/06/22 08:04
저도 휴가 전에 얼굴이나 한 번.... 7월 초 환영합니다. 6월말도 괜찮고효~!
저는 요즘 대통령의 선거개입 운운을 보면서,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행정 최고 수반이 그런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밉보였으면~~ 인 거죠.
참, 주변에 막아줄 사람도 없고, 주변에 인물도 없나 봅니다.
직접 나서서 온 몸으로 총칼을 다 맞고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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