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개전 5주년


벌써 이라크전이 시작된지 5년이 지났다. 허허벌판을 질주하듯 이라크를 충격과 공포로 밀어넣었던 천하무적 미군이 불과 한줌도 못될 것 같은 저항세력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초창기 70%가 넘었던 지지자들이 이제는 미국민의 2/3이 이라크전을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이툰 부대를 보내놓고 있지만 마치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개전 5주년을 맞아 여러 신문에서 한면 정도를 할해해서 보도하고 있다.

내가 둘러본 사이트 중에서는 Council of Foreign Relation의 The Iraq War: Five Years On이 제일 잘정리놓은 듯 싶다. 해결책 중에선 다수이나 분열된 시아파 대신 소수이나 단합된 수니파를 무장시켜서 이란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자는 Stratfor의 주장이 제일 기발한 것 같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미국이 비록 세계유일초강대국이기는 하나 세계적 패권국에는 이르지 못하였고, 미주대륙에서 패권을 수립하고 유라시아대륙에서 패권국의 등장을 막는 수준이며, 미국의 국력으로도 대양을 건너 유라시아에 군사력을 투사하는 것은 힘들다는 미어셰이머 교수의 혜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미국이 해양세력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실패를 하고 있는 것은 해양세력이 대륙세력 흉내를 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해적이면 해적답게 무방비 상태의 해안지방을 습격하고 상대가 정신차려 반격하려고 하면 재빨리 바다로 튀어야 한다.

이라크에서도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꼭두각시 하나 세워놓고 철수했으면 되었을 것을 이슬람국가를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밀어붙이다가 참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 차기 미국 정부는 해결하기 힘든 큰 짐을 안고 출범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오바마나 힐러리는 집권하면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약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같다. 나는 미 국민이 이라크전을 혐오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과연 철군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지금 철수하면 지난 5년간 전사한 4000명은 의미없는 희생을 한 것이 되고, 수천억불의 전비는 쓸데없는 낭비가 된다. 그리고 세계최강 최첨단의 미군이 구식 소총과 급조된 폭발물로 무장한 비정규군에게 패배했다는 심리적 충격을 미국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미군은 클린턴 정부시절 소말리아에 들어갔다가 희생자만 내고 철군한 적이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군은 겁쟁이라서 희생자가 발생하면 철수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라크전과 같은 큰 전쟁에서 미군이 그냥 물러난다면 앞으로 미군을 두려워할 나라는 없을 것이고, 미국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조금 소극적으로 보더라도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신뢰는 폭락할 것이 틀림없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란 말은 참으로 유명한 명언이다. 다시 말하자면 군사적 승리를 정치적 승리로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Stratfor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소수파이지만 수니파 정당은 하나이고, 다수이지만 시아파 정당은 복수라면 수니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가 수립되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수니파가 지배하는 이라크가 이란을 견제한다면 걸프만 지역의 수니파 왕정국가들도 기꺼이 이라크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미군이 이라크에 장기주둔하면서 이란의 패권국 부상을 막고 중동지역을 영향권 하에 둘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이라크 분할안이나 연방국가 수립보다는 득이 많은 해결책이라고 생각된다. 이라크가 통일되어 있어야 우리가 이라크 북부의 석유자원에 접근하기도 쉬울 것이고...

by 서산돼지 | 2008/03/24 22:44 | 내 생각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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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우마왕 at 2008/03/24 23:05
이미 비엣남이라는 전례가 있지 않던가요?
Commented by 가고일 at 2008/03/25 00:56
그래서 아버지 부시는 그 전철 밟지 않으려고 오만 삽질을 해서 어느정도 가시적인 성과는 보였습니다만....

...아들 부시는 도로 말아먹었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3/25 09:22
수니파 이라크야 말로 중동에서 거의 유일한 근대국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현 시점에선 수니파가 다시 이라크의 정권을 잡는다면 그때부터 진짜 내전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시아파 정권에 충성하는 군대의 반란, 시아파 민병대들의 폭동, 이란의 지원 등등;;) 여러면에서 부시 정권이 수니파의 기반을 잔뜩 박살내놓은 댓가인 셈이지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8/03/25 16:10
후세인은 여러 모로, 특히 폭력을 통한 정권유지라는 측면에서 이승만과 비견할 만한 인물이었는데 미국은 그걸 없애버렸으니 당연한 댓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닉슨은 부통령 시절 베트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승만 같은 SOB가 필요하다고 했다지요. 근자에 읽은 천조국 사람이 쓴 책 하나도 남한의 성공 요인 중 건국 초기의 폭력을 통한 질서유지에 주목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Commented by vvin85 at 2008/03/26 00:10
지금까지 묻어둔 돈을 다시 빼오는 건 엄청난 도박임이 틀림없지만, 자국내에도 인기가 없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아무도 모르는 게임을 계속 하는 것도 답은 아니지 않나요? 지금 상황에서 병력을 두 배로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진 않은데 말입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면 지금이라도 손 떼는게 낫죠.
Commented by 어부 at 2008/03/26 08:50
현재의 SOB 상황과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지 어렵긴 합니다....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3/26 15:44
우마왕님> 베트남전도 물개가 땅개가 되려다가 혼줄이 난 사건이었지요
가고일님>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례라는 해석이 있읍니다. sonnet님의 분석을 쭉 읽어보니 그런 측면도 있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라피에사쥬님> 시스템을 망가트리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몇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서로의 의지를 피의 무게로 재어야 하는 것은 아닐가 싶습니다.
길읽은 어린양님> 권력의 진공상태에서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건국초기 폭력사태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았다고 봅니다.
win85님> 이 판만 아니라 다른 쪽 판에 이 판을 이긴다고 걸어놓은 것이 많아서 쉽사리 손을 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부님> 키신저 회고록을 보니까 백악관 생활 하루하루가 계획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없고, 터지는 사건 처리하기 바쁘더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시 하는 것을 보아서서 계속 밀고 나간다 같은데, 다음 미국정부는 뒷정리하기 참 힘들 듯 싶어요.
Commented by 무명씨 at 2008/03/28 00:59
그럼 지도자만 후세인에서 다른 놈으로 바뀌었을 뿐 전쟁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군요. 후세인도 첨에는 미국하고 친했던 것 같은데 그 놈이 후세인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죠.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3/28 11:09
무명씨님> 후세인이야말로 미국이 진정으로 바랐던 스타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만 건드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큰소리 치면서 중동을 주무르고 있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들은 뒤 수십년만에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찾으려면 그 몇배의 시간이 걸릴 듯 싶습니다.
Commented by 무명씨 at 2008/03/28 22:43
제 솔직한 생각으로는 이라크 사람들이 쓰레기통에서 민주주의를 찾든지 말든지 외부인들이 왜 신경써야 하나 싶습니다.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실제 이유는 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겠지만요.
Commented by 서산돼지 at 2008/03/30 07:35
무명씨님>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읍니다.

"세계 한 구석에서 일어난 정치불안이 미국의 무역로와 해외시장과 해외 공급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미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30년전 미국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멀리 떨어지고 가난한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이해관계가 가장 관계없는 국가들을 꼽으라 했다면 십중팔구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가 첫 손에 꼽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 나라도 미국 군인을 파견해야할만큼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어떤 사회도 옛 이스터 섬 사회나 마야왕국 처엄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지 않고 홀로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든 사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우리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다.(p.712)"

지구촌이라는 말이 있지요. 세계 각국이 그만큼 가깝고 서로 의지하면서 산다는 뜻이겠지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읍니다만, 우리나라처럼 무역과 대외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큰 나라는 국제사회의 안정과 질서의 유지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동지역은 세계의 발칸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화약고이지요. 이라크는 중동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가장 많은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시아파 이란이 중동의 중심부로 확대되는 것을 막고 있읍니다.

우리나라도 무역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 언저리를 돌고 있읍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는 나라라면 국제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책임있는 당사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명분으로 이라크에 파병한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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