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잡상


요즘 나온 국제정치서적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국제정치에서 강대국들은 서로를 두려워하여 더 많은 힘을 가져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 서로 싸움을 한다며 이런 자신의 이론을 공격적 현실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전쟁을 하기 때문에 비극이라는 뜻인 듯 싶다.

대개 많은 사회이론들처럼 국제정치이론들도 결국은 사람이 착하냐, 악하냐는 혹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는 입장차이에 따라 갈라진다. 차이점은 국제정치이론들은 분량이 매우 적고 간단하다.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책도 요약하면 반장내지 1장에 들어간다. 논의수준도 다른 인문학에 비하면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듯 싶다. 우리나라에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은 것도 배우기 쉽기 때문인 듯 하다.

문제는 이론이 현실과 얼마나 맞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정치이론은 이론은 한줄인데 설명이 수십페이지가 들어가고 과거의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는 식으로 구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각 학자의 이론을 요약, 정리한 책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특이했던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힘을 투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강대국은 자신이 속한 대륙에서 패권국의 지위를 얻고, 다른 대륙에서 패권국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다. 둘째, 군사력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육군이다. 공군과 해군은 육군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저자는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서 패권국 지위를 차지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패권국이 등장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밖에 미국의 군사력이 바다를 건너 아시아와 유럽의 강대국을 공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에 동맹국을 가져야 한다. 전쟁을 할 경우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은 결국 육군이다. 중국의 국력이 신장되면 필연적으로 미국과 경쟁 혹은 충돌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자제한다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다 등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폴레옹전쟁이후 많은 국제사건을 분석하였다. 다른 국제정치학책들이 너무 구체적인 사례를 다루는 경향이 있어, 저자가 설명하는대로 그게 그런가 보다 하고 읽어내려갈수밖에 없었지만 이책은 나폴레옹전쟁, 보불전쟁, 1차대전, 2차대전 등 큰 사건을 분석하고 있어서 사전지식이 조금 있는 편이라서 읽기 편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된 과정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2차대전 직전 아시아에는 일본, 소련, 중국이라는 3개 강대국이 있었다. 일본과 중국은 전쟁중이었으나 어느 한쪽으로 승패가 갈리지는 않았다. 동남아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군사력이 주둔해있었다. 2차대전이 발발하여 네덜란드, 프랑스가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고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에 전념해야했지만, 동북아에서 일본,중국,소련이 균형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패권국이 등장할 염려는 없었다. 그런데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게 되자 상황은 급변하였다.

독일과 일본은 반공협정을 맺은 나라이다. 만일 일본이 소련을 공격한다면 소련은 2개의 전선을 감당할 수 없고, 유럽에서는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패권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미국은 2차대전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83년인가 84년인가 TV에서 전쟁의 폭풍(wind of war)이란 제목으로 로버트 밋참 주연으로 2차대전 미니시리즈를 방송했었다. 이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대사가 히틀러를 면담하면서 악수를 거절하고 지금부터 영국은 독일과 전쟁상태에 돌입한다고 선전포고를 하는 장면이 아주 멋있었다. 로버트 밋참이 전함의 함장에 임명되어 진주만에 부임하는 날이 마침 일본군의 진주만 폭격을 당하는 41.12.8이었고, 로버트 밋참이 침몰하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장면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 미니시리즈가 인기를 얻자 전쟁과 추억(war and rembrance)이라는 속편이 제작되었고, 유럽과 태평양의 주요 전투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후 몇년인가 지나서 1부가 번역출판되었다. 거의 A4사이즈 1권으로된 두꺼운 책이었다. 요즘같으면 아마 5권은 넘게 분철되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책에는 미니시리즈에서는 그냥 넘어간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로버트 밋참의 큰 아들이 해군 비행사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근무하고 있었다. 장교들이 돌아가면서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데 마침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는 뉴스가 나자 큰 아들이 이 문제를 해설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때 함대사령관인지 직책은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장군이 큰 아들의 해설을 듣고 있다가 질문을 하였다. 독일의 소련침공이 엔터프라이즈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큰 아들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아시아의 군사력은 일본군, 연해주 시베리아의 소련 적군, 동남아의 영불군, 그리고 필리핀, 하와이의 미군 이렇게 4자가 균형을 잡고 있는 의자와 같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과 영국전쟁으로 동남아의 영불군은 제거되었다. 의자의 한 다리가 잘려나간 것이다. 독일의 소련침공으로 아시아의 적군은 유럽으로 이동할 것이다. 또 한다리가 잘려나간 것이다. 이제 일본군에 맞설 세력은 미국밖에 없다. 두 다리밖에 없는 의자는 넘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독일의 소련침공은 엔터프라이즈에게 비상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장군은 박수를 치며 일어나서 비상을 걸었다.

미니시리즈에서는 자세하지 않지만 책에서는 로버트 밋참의 둘째 아들인가 세째 아들의 연해행각이 제법 나왔다. 무슨 일인지 유럽에 갔다가 유태인학자와 그 조카딸(이름이 나탈리인가?)을 만나게 되었다. 조카딸에게 한눈에 반했는데 이미 애인이 있다. 두사람 주변을 빙빙도는데 조카딸은 애인과 무슨 일(나치에 가입했건가?)인지 싸우고 둘째 아들에게 다가와 목을 양팔로 감싸고 당신이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난 연하의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제 당신이 이겼다 등등 만만치 않는 포스를 풍기고, 둘째 아들은 한방에 가버렸다.

이 조카딸역을 한 여배우는 그전에 battlestar galactica에서 잠깐 나와서 주인공에게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는 과부라는 비극적인 역할로 내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각인을 남겨놓은 제인 세이모어이다.



이 여배우가 나온 작품중에 기억남는 것이 배틀스타 갤락티카, 전쟁의 폭풍, 전쟁과 추억, 스카렛(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편), 깊은 밤 깊은 곳에 2 등 여러개가 있는데 정작 이름은 몰라서 제인 세이모어라는 이름은 이글을 쓰면서 네이버에서 찾았다. 알고보니 007 죽느냐 사느냐에서도 본드걸로 출연했단다. 국민학교때 극장에 몰래 들어가서 본 첫번째 007 영화가 바로 이 죽느냐 사느냐 였다.
by 서산돼지 | 2004/12/25 09:18 | 읽을 거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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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다스베이더 at 2004/12/25 21:36
성탄절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용~
의미있는
재미있는
우울한??



집안일 모드라서...
Commented at 2005/01/02 18: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orwin at 2005/02/08 00:37
이거 저도 기억납니다. 로버트 미첨이 참 멋지게 나왔지요. 근데 미첨이 젊은 기자(?)랑 바람난 것도 기억나네요. 전쟁 장면은 현대의 스펙타클 그래픽 효과도 없었는데 참 현실감이 높네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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