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영국생활
2008/08/09   그릇 사러가기 - Stoke on Trent
2006/06/18   영국 음식 [1]
2006/05/07   영국의 council tax [5]
2004/10/21   조카 유치원 보내기
2004/09/01   영국의 입국심사
2004/08/31   캠브리지대학에서의 6개월 [1]
그릇 사러가기 - Stoke on Trent
주변에 아이들 교육/연수 등의 이유로 영국에 가시게 된 분이 몇분 계셔서 조언을 구하시기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Stoke on Trent에 그릇을 사러갔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내 경험담을 이야기했더니 남녀를 불문하고 듣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거의 몰입지경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금요일에 이글루에서 인기순위로 상위권에 속하신 분과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분도 그릇이야기가 나오니 아주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가만히 되새겨보니 2003년 여름에 "금부치보다 이런게 보물이야"하면서 Stoke on trent에 미칠 듯이 그릇을 사러갔던 일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더 이상 망각하기 전에 포스팅해놓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케임브리지에 도착해서 정착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다가 여러 좋으신 분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쇼핑이야기가 나왔다. 케임브리지에 오래동안 계시면서 목회활동을 하시던 목사 사모님이 제일 첫손으로 꼽은 것이 바로 스토크 온 트렌트에 가서 그릇을 사오는 것이었다. 그릇공장이 수백개있는데 저마다 아웃렛을 두고 한국에서 수십만원 하는 그릇을 몇천원, 몇만원에 판다는 것이다. 아웃렛이 있는 공장만 해도 웨지우드, 포트메리온, 로얄 덜튼, 앤슐리, 로얄 알버트 등등 그릇에 대해 잘모르는 내가 주어들은 적이 있는 유명한 회사가 줄을 이었다. 당연히 진아 이모(그때는 동현이를 얻기 전이었고, 조기유학을 원하는 동서내외의 부탁으로 진아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케임브리지 시절 나는 진아 이모부, 내 처는 진아 이모로 불리웠다)는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곳은 케임브리지에서 거의 3시간 이상 가야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분들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6월에 세일을 하니 그때 여러 집이 모여서 한번에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6월말이 되자 약속을 했던 가족들이 하나 둘씩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고 케임브리지에는 우리 가족과 광주에 있는 대학에서 영국사를 가르치시는 이교수님 내외만 남게 되었다. 이교수님 내외분도 전공이 전공인지라 영국에 여러번 오셨지만 스토크 온 트렌트에 한번도 가보시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쯤 가서 그릇을 사고 싶어 하셨다.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매주 주말은 교회분들과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곤란했다. 주중에 가야 하는데 주중에는 진아를 유치원에 9시쯤 데려다주고 5시쯤 찾아와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동안 스토크 온 트렌트를 왕복하기 곤란하고 천상 수업에 빠져야 하는데 한달 등록금이 100만원이나 드는 유치원을 그릇때문에 빠진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교수님은 운전을 못하시고, 사모님이 운전을 하시는데 이분이 길눈이 조금 어두웠다. 이런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스토크 온 트렌트 어디를 가야 아웃렛이 있냐는 것이었다. 이교수님은 스트크 온 트렌트의 역사를 소상히 알고 계셨다. 스토크 온 트렌트 근처에 석탄광이 있고 교통이 편리해서 도자기 만들 흙을 날라와 도자기 산업이 육성되었다. 그런 마을이 여기 저기 있었는데 행정편의상 그런 마을 6개를 묶어서 스토크 온 트렌트란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을과 마을이 인접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km에 걸쳐서 쭉 늘어져 있다는 것이다. 위치를 모르고 함부로 갔다가는 헛탕을 치기 딱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동승해야 한다는 것이 현지분들의 말씀이셨다. 그래도 원체 크고 넓고 고를 그릇이 많아서 아웃렛을 하루에 1-2군데 밖에 못들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주전 같은 교회에 다니는 분 가족이 그릇공장에 갔다왔고 지도를 가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도를 보면서 가면 좀 낫겠거니 싶어서 빌려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1장밖에 없다면서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상당히 기분이 않좋았다. 좋아 그럼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슬슬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가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려서 지도 달라고 하면 된다!

이웃에 사는 케임브리지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부부에게 진아를 부탁하였다. 영국은 묘해서 미리 대리인을 지정하고 암호를 서면으로 유치원에 알려줘야 원생을 내준다. 그래서 위임장을 작성해서 한부는 유치원에 한부는 학생부부에게 주었다. 이교수님 내외분에게는 우리랑 동승하기를 권했다. 교수님과 사모님이 몹시 흡족해 하셨다.

7시가 되기전 케임브리지를 출발했다. 영국은 지도를 보다시피 우리 한반도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남북으로 좀 늘려놓고, 목포쪽이 조금 더 긴 형상이다. 케임브리지는 안동쯤에 있는데 그릇공장이 있는 스트크 온 트렌트는 마침 안성 정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하게 남북으로 이어주는 고속도로망이 서쪽에 치우쳐 있어 케임브리지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먼저 서쪽으로 한두시간쯤 나아가서 M6를 타고 올라가야했다. 도중에 영국 유수의 대도시인 버밍검을 통과해야 해서 러시아워에 걸려서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2시간 반쯤 가니까 M6에 스토크 온 트렌트로 가는 출구가 보였다.

고속도로에서 스토크 온 트렌트 까지 가는 동안 차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과연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길을 찾아서 소정의 목적을 거둘 수 있을련지 다들 자신이 없었다. 침묵은 도시에 진입하기도 전에 깨졌다. 초록색 도로표지판 밑에 고적 또는 관광지를 알리는 황토빛 색깔의 포트메리온 표지판이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들어가니 사방에 아웃렛 표지판이 걸려있었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차안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제일 먼저 가까운 포트메리온 아웃렛으로 들어갔다.


<그때 우리 일행에 처음 들렸던 포트메리온 아웃렛이다. M6에서 나와 시티 센터에 들어가면 바로 있어서 찾기 쉬웠다. 포트메리온 아웃렛이 3개인가 있는데 그중 제일 컸다. 2007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차를 세워놓고 사모님이 만들어오신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사모님 말씀이 식당들어가서 먹을 시간이 아까우셨단다-들어가보니 왜 하루에 몇군데 못들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릇을 함부로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고르다보면 시간이 아주 잘간다.
진열대에 있는 물건보다 바닥에 바구니에 담긴 물건 가격이 쌌다. 세트를 만들어놓은 물건보다 컵따로 받침 따로 있는 것이 쌌다. 하여간 그날 저녁 문닫을 시간까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마을이 조금씩 떨어져있었지만 생각보다 가까웠고 동네도 크지 않아서 마음먹고 도니 주요한 공장은 다 돌 수 있었다.

점심먹고 내 주장으로 도자기 박물관 구경도 했다. 글래스턴 뮤지엄이었는데 옛 공장을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아주 구경할 거리가 많았다. 특히 좌식 변기의 발전사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나중에 뮤지엄 구경을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뮤지엄 입장권을 가지고 오면 포트메리언과 기타 몇몇 공장에서 10% 추가 DC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트렁크 가득히 그릇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가는 공장마다 안내지도를 잔득 집어와서 목사님댁에 맡겼다. 지도 한장만 있으면 우리처럼 가슴조리며 가지 않아도 될 것을 뭐가 아깝다고 빌려주지 않는지 원 참...

그 뒤로도 시간이 있을때마다 M6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갔다. 갈때마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할인상품이 나와서 우리를 실망시켜주지 않았다. 인터넷은 좋은 것이었다. 서울 백화점에서 파는 상품을 눈여겨 본 다음 가서 그 상품과 그 뒤에 나온 신 디자인을 골라왔다. 쇼핑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왜냐구? 가격표를 비교해보면 된다. 서울 가격에 1/10 가격으로 사는데 뭐가 두려울 것인가?


스토크 온 트렌트에 있는 주요한 아울렛 Browsing Factory Shops이다.

그런데 이것보다는 도자기 관광가이드맵이 훨씬 유용하다. 우리 부부가 이 지도를 들고 스토크 온 트렌트를 돌아다녔다.



여행을 가서 어떻게 도자기를 들고 다니느냐고 걱정할 필요가 하나 없다. 구입한 곳에서 서울로 배송해 달라고 하면 그자리에서 면세처리해서 부가가치세 환급해주고 종이로 여러겹 포장하고, 튼튼한 박스에 넣어서 보내준다. 보험금 몇푼 안하니까 들어두면 깨지더라도 보상도 해준다. 세관에서 걸리면 어떻게 하냐구? 서울 가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할인가로 구매하였는데 무엇이 걱정거리인가? 박스 안에 영수증 넣어달라고 해서 보내면 구입가+배송료에 관세가 붙는데 얼마되지 않는다. 그냥 내라는대로 내고 나와도 하나 부담이 없다. 나중에 시간있으면 그때 샀던 그릇사진을 올려볼 생각이다.
by 서산돼지 | 2008/08/09 21:24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0)
영국 음식
영국의 극악한 요리

페로페로님에게서 트랙백 했다.

내가 2003년 한 학기 동안 케임브리지에 있으면서 집에서 음식만들기 귀찮아서 외식을 종종 하였다. 주로 동네 펍에서 했는데, 원칙적으로 펍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지만 놀이터를 갖춰놓은 펍은 저녁 8시 까지 아이들과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밀턴로드를 따라 외곽으로 나가보면 큰 놀이터가 있는 펍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화이트 호스인데 속칭 헝가리안 펍이라고 불렀고, 간판에도 화이트호스 밑에 헝가리안 펍이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주인이 헝가리 사람이 아니고 배고픈 사람을 위해 양을 무지무지 많이 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주로 쇠고기 로스와 닭이었는데, 양은 푸짐했지만 맛은 없었다. 6개월 동안 영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았지만, 많은 음식점들이 대개 고만고만한 맛이었다. 다만 도심이나, 시골이나, 관광지나 한결같이 비슷한 가격이었다.




영국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아침식사였던 것 같다. 영국의 아침식사는 푸짐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우리는 주로 장보러 테스코 슈퍼마켓을 갈 때 슈퍼 안에 있는 카페에서 allday mega breakfast를 먹었다. 이름은 아침식사이지만 하루 종일 먹을 수 있었다. 2.99파운드에 우리 식구 세 사람이 먹으면 딱 알맞는 양이 나왔다. 사진을 다운받으려고 테스코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메뉴에 없어서 의아했는데, 계시판에 다시 내놓아달라는 글이 올라와있는 것으로 보아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짤방은 다른 곳에서 퍼왔지만 대강 비슷하다. 테스코에서는 저기에 토스트 몇장과 구은 토마토를 더 주었다.




또 다시 테스코이다. 테스코 안에는 닭과 돼지를 오븐에 구워서 파는 코너가 있다. 그중 돼지 앞발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족발 비슷했다. 족발로 만든 구은 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다.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2-3파운드 정도였던 것 같다. 무게는 1킬로 내외. 한개 사오면 잘 먹을 수 있었지만,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다 팔려서 살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우리는 보통 저녁에 수퍼에 가곤 했는데, 이걸 사러 종종 아침에 슈퍼를 갔다. 2-3회 가면 1번쯤 살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이 몇개 있어서 함께 올린다.



< 스코트랜드 에딘버러 로양마일에서 하기스를 기다리며 한장 >

에딘버러에 갔는데, 소문난 하기스를 먹지 않고 지나친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딘버러성 앞 로얄 마일에서 이리저리 찾았는데, 서빙하는 집이 별로 없어서 물어물어 찾아갔다.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한 요리였고, 맛도 간을 넣어서 만든 순대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스코트랜드 사람들은 아이들이 하기스를 무엇가지고 만드냐고 물으면, 하기스라는 동물을 가지고 만든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못해서 농사짖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결국 양을 키워서 잉글랜드랑 프랑스랑 교역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스코트랜드 사람들의 음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스 만드는 법은 도라지님 블러그에 나와있다.


< 잉글랜드 남부 도버해협의 흰색 절벽을 세븐시스터즈라고 부른다. 브라이튼을 구경하고 들렀는데, 바로 앞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차를 놓고 황무지를 1-2킬로 정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주차장 옆에 큰 펍에서 조카 아이가 포즈를 잡았다. 차는 맛있었는고 경치는 죽여주었지만 음식은 역시 별로 였다.>


< 아이를 데리고 음식점에 들어가면 짤방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크레파스와 종이를 주었다. 아이들이 색칠하며 노느라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짤방은 칩스이다. >



by 서산돼지 | 2006/06/18 12:43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1)
영국의 council tax
각국의 부동산 세금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지내면서 가장 의야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council tax였다. 주민세라고 번역해야 하나 재산세라고 번역해야 하나 싶은데, 집주인이 아니라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한테 걷었기 때문에 주민세라고 생각했다. 시청을 city council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지방세인가 보다 했다.
내가 살던 집은 집 두 채가 붙어 있는 세미디태치드 하우스를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 플랫 6개를 지은 새집이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대충 15-18평 아파트 정도 된다. 디태치드 하우스는 2층집-1층은 식당과 거실, 2층은 침식-이고 세미디태치드 하우스는 2층집 두개가 붙어 있는 집이다. 수도, 전기같은 것은 같이 쓸 수 있어서 건설비용이 좀 줄어든다. 플랫은 한층에 식당, 거실, 침실이 같이 있는 집이다. 당연히 디태치드, 세미디태치드, 플랫 순으로 가격이 싸다. 새로 지은 집이여서 몇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는데, 지적이 빨리빨리 갱신되지 않는지, 전화를 놓으려고 해도 그 지번에 집이 없다고 2달을 끌었고, council tax가 거의 5개월이 지나서 나와 처리하기 바빴는 점 등이다.
문제는 council tax가 무려 900파운드-당시 돈으로 180만원 정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때와 나올때는 사람 마음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영국에 들어갔을때 내라고 했으면 어쩔 수 없는 경비라고 생각했겠지만, 출국이 1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180만원을 내는 것은 몹시 아까웠다. 주변사람한테 알아보니 비지팅 스콜라로 온 사람들한테는 50%를 감면해준단다. 그리고 900파운드는 1년치기 때문에 나같이 6개월간 거주하는 사람은 또 절반으로 할 수 있단다. 그러면 대충 40-5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일딴 인터넷으로 이의신청을 하고, 편지로 썼다. 회신이 없길래 학교에서 내가 비지팅 스콜라로 있다는 서류를 만들어서 리전트 스트리트에 있는 city council중 세금관련 부서가 있다는 맨들라 빌딩으로 갔다. 문 열고 들어가니 40대 중반 정도 되는 남자상담원이 있는데, 내 문제를 이야기 했더니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비지팅 스콜라도 전액 내야한다는 것이다. 큰 일 났다 싶어서 50세 정도된 여자 담당자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비지팅 스콜라라고 다 감액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국에 집이 있어서 재산세를 내고 있다면 50%를 감액해준다는 것이다. 관련서류를 영어로 번역할 필요는 없고 한글로 된 영수증 카피본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하여간 어찌어찌 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council tax를 내서 내가 덕본 것은 매주 한두차례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것이었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집앞에 프라스틱통에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넣으면 시청에서 수거해갔다. 그렇게 해서 걷어간 council tax의 90% 정도는 교육비로 쓴다고 한다. 학생은 면제를 해준다.
그러고 보면 덕을 본 것이 하나 더 있다. 같이간 조카아이를 공립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사립 유치원에 넣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데 한달 등록금이 100만원 정도 했다. 한달 정도 지나니까 교육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매달 40만원씩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내 영국입국비자에 분명히 정부나 기타 기관으로부터 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명기되어 있는데, 이곳은 기관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생각보다 허술하단다.
자식을 키우면서 그 정도 보조를 받을 수 있고, 시내 전체가 공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게 조경이 될 수 있다면 그 정도 세금은 즐겁게 낼 용의가 있다.
by 서산돼지 | 2006/05/07 08:31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5)
조카 유치원 보내기
캠브리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한 일은 물론 학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다음 해야했던 것이 바로 조카을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캠브리지로 가게 되었을때 같은 마을에 사는 동서가 술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큰 딸을 같이 데려가 주었으면 한다는 의향을 비췄다. 조기 영어공부를 시키고 싶다는 것이였다. 6살짜리 여자아이인데 무척 이쁘고 어른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술좌석에서 나온 이야기이고, 아무리 동서가 원한다고 해도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성사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해서 승락을 하고서 사실 잊어먹었다. 그런데 장인장모를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큰아이를 영국에 보내려고 하는데 형님이 쾌히 응낙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치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를 가르켜서 코가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리라.

다음부터 영국유치원을 알아보느라고 이곳 저곳 뒤져보았다. 캠브리지 시청(City Council)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학교입학전 아동교육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있었다. 유치원도 많았고, 아동보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도착해서 근처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면 될 것같았다. 더구나 공립유치원은 무료였다.

한데 오산이었다. 유치원을 배정받기 위해 시청 담당공무원에게 편지를 썼는데, 내 딸이 아니라 조카이기 때문에 공립학교는 안되니 사립을 넣으라는 답장이 왔다. 하두 답답하고 분이 치밀어 올라서 화를 달랠 겸해서 그날 무작정 런던구경을 갔다왔다.

마침 내가 살게된 Histon Road 209 바로 뒤에는 메이필드학교가 있었다. 캠브리지에서 괜찮은 국민학교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설 유치원이 있었다. 학교장의 재량으로 입학시켜주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보았는데, school master가 반갑게 맞아주면서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서는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서류를 내밀었다. 며칠전 시청에 보냈던 바로 그 신청서 용지였다. 아이 걸음으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가 참 좋은 학교였는데 아쉽지만 포기해야했다.

요즘 소식을 들으니 몇주전 어떤 사람이 일요일에 방화를 해서 학교가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아드리안 여학교 건물을 빌려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이 불어탄 메이필드학교의 모습이다.



다음으로 가본 곳이 대학교 병설 유치원이었다. 캠브리지에는 캠브리지대학 말고 또 다른 대학교가 있었다. Angolia Polytech University 줄여서 그냥 APU라고 불리는 대학인데 예전에는 전문대학이었는데 대처총리때 교육개혁으로 대학으로 승격된 학교이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자세히 쓰려고 한다) 캠브리지대학에는 어학과정이 없고 APU를 가라고 추천을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싸고 교육을 잘한단다. 그리고 어학과정에 등록하면 학교시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서 편리하단다. 크기는 운동장이 없는 외대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경영학분야에서는 영국내에서 5위안에 들어가는 학교이다.

이 대학에 아이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유치원이 있다. 마침 나도 학교를 가고 조카아이도 유치원을 가면 마누라 혼자 집에서 심심할 것같고, 이런데서 영어를 배우고 졸업장을 갔고 가면 한국에서 아이들 영어교사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APU에 10주짜리 영어과정에 등록을 했다. 학교갈때 데리고 가서 유치원에 맡겨두었다가 하교할때 찾아오면 되겠다는 심산이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또 그러라고 만든 유치원이라서 자리가 없었다. 수업료도 생각보다 비쌌다. 하루에 20파운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리가 나려면 10월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9월이면 나는 귀국하는데....

결국 사립유치원을 보내야 하나보다 하고 집에서 캠브리지 전화부에 나온 유치원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한 서너개가 물망에 올랐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그때 이웃에 사는 평소에도 도움을 많이 지고 있는 교포아주머니께서 근처에 Milton Road에 사립유치원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물망에 올랐던 곳중 하나였다. 아주머니께서 학교에 가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먼저 전화를 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 다음주 화요일에 예약을 했다.

화요일에 가보니 카렌선생이라고 20대 중반쯤 되는 미인여선생이 나왔다. 우리는 6개월동안 머물 예정이고 그동안 조카아이를 입학시킬 수 있다니까 그러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놀이와 동화책 읽어주기가 위주이구 매일 매일 한시간씩 산수,프랑스어,예절 등을 가르친다고 했다. 메뉴표가 붙어있었는데 3주동안 중복되는 메뉴가 없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밑의 사진이 조카아이를 안고 있는 카렌선생이다. 카렌은 조카아이의 담임이었다. 훨씬 더 미인인데 너무 웃다보니까 얼굴에 주름살이 너무 많이 잡힌 것같다.


그 학교는 Cambridge day nursery이며 탁아소, 유아반, 유치원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카아이는 유치원반에 들어갈 수 있었고, 오전반, 오후반, 전일반에서 택일 할 수 있었다. 전일반은 아침 8시반에서 오후 5시 반까지 였다. 맞벌이부부 아이들한테 적합한 것같았다. 조카아이 조기영어교육을 위해 데려왔기 때문에 전일반에 넣기로 했다. 알았다고 하면서 입학서류를 내미는데 거의 책 한권 분량이었다. 집에가서 써서 우편으로 붙이란다. 그때 우리는 며칠동안 스코트랜드 여행을 준비중이었기 때문에 여행에 돌아온 다음부터 아이를 보내기로 하였다.

입학서류에는 별의 별 것이 다있었다. 생년월일, 부모이름, 주소 등등 인적 사항을 적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만일 보호자가 아이를 데릴러 오지 못할 경우 대리인을 보낼때 알려주는 암호를 적어서 한장은 보관하고 있고 한장은 제출하라고 했다. 입학서류중 가장 이상했던 것이 보조금 신청서였다. 우리는 보조금이 나오지 않을텐데 하면서도 혹시 몰라서 작성을 하였다. 한달 등록금이 무려 540파운드 그때 환율로 108만원이었다.

한달후 유치원연합회라는 곳에서 편지가 왔는데 한달에 200파운드씩 보조금을 주기로 했단다. 이곳에서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한테 나오는 보조금이란다. 행정체계가 좀 허술한 구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9시간 아이를 보살펴주고 아침 10시에 간식주고 12시 반에 점심주고 3시 반에 또 간식을 준다. 그리고 60만원이면 서울에서 영어유치원보내는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실수를 했더는 것을 깨달았다. 시청에 서류를 보낼때 그냥 조카라고 정직하게 말하지 말고, 내 딸이라고 했으면 입학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조카하고 성이 다른데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까 아내의 전남편 소생이라고 하면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학비는 들지 않았겠지만 공립유치원은 오전반만 있기 때문에 12시 반이면 아이를 찾아와야했을 것이다. 아이를 영국에 데려온 목적에 비춰볼때 사립유치원에 넣은 것이 올았던 결정인 것같다.





by 서산돼지 | 2004/10/21 22:49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0)
영국의 입국심사
처음 영국에 가게 되었을 때 비자나 세관통과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비자발급이 까다로운 미국과는 달리 영국과는 6개월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영국비자를 받는 방법을 읽어보았지만 체류기간이 6개월에 불과한 나로서는 복잡하게 아카데믹 비자를 받느니 그냥 영국공항에서 비자를 받는 것이 훨씬 편리할 것같았다. 다만 문제는 동행하는 조카였다. 학술비자를 받지 못하고 방문비자를 받는 경우 공립유치원에 입학시키는 것과 의료보험이 문제가 될 것같았다. 뭐 대학에서 보내준 정식초청장이 있으니 잘되겠지. 다른 사람이 쓴 영국기행기, 특히 박상권씨가 조영특파원을 하면서 겪은 일을 쓴 책을 보면 영국은 유연한(?)나라인 것같았다. 그것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히드로공항에 도착하면서 즉시 깨닫게 되었다.
영국방문 목적을 묻는 출입국 관리(20세 초반의 흑인여성, 상당히 우람했다)은 대학교에 Visiting Scholar로 6개월간 체류할 것이라는 내 대답에 초청장을 보자고 했다. 초청장을 보여주니까 체류기간중 경비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내 직장에서 대줄 것이라고 했더니 letter를 보잔다. letter를 보자는 소리를 이후에도 많이 들었다. 편지라니 무슨 편지? 내 직장에서 나를 6개월간 일체비용을 대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가 있어야 한단다. 영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읽었던 바로 그 서류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국에 학술비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류기간, 일자, 그 동안 영국내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다는 내용의 초청장과 소속기관에서 급여내용, 재직기간, 직위등을 명시하고 체류기간동안 일체의 경비를 부담한다는 일종의 재정보증서, 그리고 재정증명을 위한 통장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당황하기 시작했고 내 뒤에 있던 많은 한국사람들은 안되었다는 듯한 눈으로 옆에 있는 입국심사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터가 없다고 하자 내 월급을 물었다. 대충 얼마다 라고 하니까 얼마가지고 있느냐고 묻더니 돈 좀 보잖다. 마침 통장개설하기 전에 쓸 돈과 차살 돈을 가지고 있었다. 4000파운드쯤 되는 현금과 각종 신용카드를 보여주었다. 돈을 보더니 그 다음은 어디서 거주할 것이냐고 물었다. 다행히 영국에서 집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 분을 통해 미리 집을 계약해두었고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 계약서를 보여주었더니 뒤어있는 상관에게로 가서 뭐라고 의논을 한다. 입국거절 당하면 이게 무슨 망신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채 5분이 안지나갔다. 집을 미리 계약했던 것이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같다.
입국심사관이 다시 돌아오더니 이제 공격의 화살을 조카아이한테 돌렸다. 누구냐. 여권에 성이 다르기 때문에 내 자식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내의 여권에는 wife of Suh라고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몇년전 처녀때 여권을 가지고 영국에 들어가던 한 부인이 자기 남편의 아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고 남편과 아이는 학술비자를 받았는데 자기는 방문비자를 받았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국에 가족동반으로가시는 분은 부인의 여권을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실대로 조카라고 했다. 왜 조카를 동반하느냐? 조카란 것을 증명할 서류가 있느냐? 몇살이냐? 체류기간 동안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비용은 누가 대느냐?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이냐? 고국에 있는 아이부모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이냐? 등등 질문의 홍수가 쏟아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공격을 당하여 당황했지만 차근 차근 대답하였다. 동서부부가 조기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나도 아이에게 넒은 세상과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체류기간 동안 이 아이에게 드는 비용은 내가 다 댈 것이다. 아프면 병원가고 전화하면 된다. 이때 가장 버벅거렸던 것이 유치원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pre-elementary school, kinder garen,안되니까 불어로 enfant ecole이라고도 하고... 하나도 알아듣지를 못하더군요. 결국 nursery냐고 되묻더군요, 영국은 미국에서 쓰는 영어란 다르다더니... 하여간 조카아이에 대해서 한 20분 정도 묻더군요. 그리고 다시 상관에게 가더니 뭐라고 한참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서 여권에 꽝꽝 비자를 찍어주더군요. 정부나 공공기관의 보조를 받지 않는 조건에서 6개월간 체류허가였읍니다.
이런 경험을 겪고나니 영국입국심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영국에서 서울에 제일 먼저 보낸 메일이 바로 우리 부부와 조카아이의 혈연을 증명할 수 있는 호적을 영어로 번역 공증하고 우리 부부한테 조카아이를 맡긴다는 내용의 영문편지를 공증받아서 보내라는 것이었읍니다. 그 서류가 올때 까지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파리에 유로스타타고 놀러갔다 오자는 꿈을 접어야 했읍니다. 그런데 나중에 서류가 오고나서 대륙에 놀라갔다 다시 입국하였을때는 이미 비자가 찍혀있어서인지 보자는 소리를 하지 않더군요. 영국입국과 관련해서는 그곳에 살면서 들은 이야기를 나중에 다시 한번 써야겠읍니다.
by 서산돼지 | 2004/09/01 23:05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0)
캠브리지대학에서의 6개월
작년 3월달에 운좋게 캠브리지대학에 Visiting Scholar로 초청을 받아서 6개월간 머무르게 되었다. 외국생활은 처음이어서 가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하였지만 초기정착이 매우 힘들었다. 한달 두달이 지나서 익숙해질만 했을때 의문이 생겼다. 영국에 비지팅으로 오는 사람이 일년에 몇십, 몇백은 될것인데 왜 영국에서 단기체류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가 이렇게 부족할까? 영국생활에 대해서는 견문록이나 여행기 몇권이 있고 어학연수를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정보만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단기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매사가 거의 다 그렇듯이 귀국을 하고난뒤에는 깨끗이 망각의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6개월간 머무르면서 하루하루 힘들었던 일과 재미있는 일을 일기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되살릴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돌아오면 미국애찬론자가 되거나 반미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반면 영국에 가면 울면서 갔다가 울면서 돌아온다고 한다. 영국인의 쌀쌀함과 정착의 어려움때문에 울고, 돌아올때면 너무 섭섭해서 운다고 한다. 나도 돌아올때가 되었을때 대학교에 연봉 2만 파운드...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황당한 금액이다. 캠브리지대학 교수 초봉이 1만5천 파운드 정도이다...만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있으면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영국생활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싼 물가와 높은 진입장벽, 단지 서울에서 보내주는 돈을 가지고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취미와 즐겁고 관심가는 분야만을 공부할 수 있는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하루하루 즐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신혼의 단꿈이 깨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놀리듯이 6개월간의 신혼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같다.

원체 바쁘게 돌아다녔고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몇년동안 겪을 일을 6개월간에 치루고 왔지 않나 싶다. 더군나 6살 먹은 조카까지 데리고 가서 입국하는 날부터 난리통을 치루어야 했고, 조카를 공립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집근처 학교와 교육위원회를 들락날락했고, 많은 기러기 가족으로 부터 초등학교와 대학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 조카는 유치원 친구 토마스를 좋아했다. 토마스는 언제나 중공군 방떡모자같은 것을 쓰고 다녔다. 매를린이라는 여자아이도 토마스를 좋아해서 학예회 때 가보면 팽팽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

지금 이렇게 시작하지만 언제 끝을 맺을 수가 있을련지...

by 서산돼지 | 2004/08/31 23:09 | 영국생활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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